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등 삼성 비자금 특검법 피고인 10명에 대한 항소심 공판이 열리던 10일 서울고법 청사 주변은 잔뜩 흐린 날씨에 비까지 뿌려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전 회장은 김인주 전 사장 등 다른 피고인들보다 약간 늦은 오후 1시47분께 평온한 표정으로 법원 청사에 들어섰다.
혹시 1심 판결이 뒤집혀 그가 다시 청사를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취재진이 몰려들어 심경을 물었지만 이 전 회장은 "여러분이 고생이 많으셨다"고 비교적 여유 있는 답변을 남긴 채 입장했다.
일찍부터 200여 명이 넘는 방청객과 내ㆍ외신 기자, 삼성 관계자, 법조 관계자 등이 몰려 417호 대법정은 발 디딜 틈 없이 꼭 들어찼고 조준웅 특별검사팀을 대표해 출석한 윤정석 특검보와 삼성 측 피고인 10명, 이들의 변호인은 침묵 속에 재판부를 기다렸다.
예정보다 4분 늦게 입장한 재판부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삼성화재 미지급보험금 사건에 대한 선고를 먼저 시작했다.
오후 2시12분. 이윽고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을 엄격히 단죄해 다시는 편법 승계가 없도록 해달라는 여론과 국민 경제에 대한 그간의 기여를 고려해 관대하게 판결해달라는 동정론이 함께 존재해 여론의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소회를 밝히며 본 사건에 대한 판결 낭독을 시작했다.
판결이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이 적정가보다 저가로 발행될 경우 회사가 손해를 입는다는 `회사손해설'과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본다는 `주주손해설' 중 `주주손해설'이 더 합당하다고 본다"는 부분에 이르자 일부 취재진은 무죄를 직감하고 긴급 뉴스를 타전하기 시작했다.
평소 경제사범을 엄단하기로 이름난 재판장이 예상을 벗어나 이 전 회장에 대한 핵심적 공소사실이라 할 수 있는 에버랜드 CB와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에 대해 모두 무죄 판단했다는 것이 명확해지자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반면 이 전 회장은 선고 내내 담담한 표정으로 재판부를 응시했고 이학수 전 부회장도 1심에서 선고된 벌금 740억 원을 면하게 됐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판결을 경청했다.
약 36분간의 선고가 끝나고 법원을 나서던 이 전 회장은 결과에 만족하느냐는 물음에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말을 아꼈다.
변호인은 "상고할지는 판결문을 받아 정확하게 읽어본 뒤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으나 `이번 판결이 기소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확인한 것이냐'는 물음에는 "(과거에) 이미 검찰에서 (같은 방식으로) 기소했기 때문에 특검은 특검대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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