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금융위기는 IMF 위기 때와는 다르다. 정부가 대비책을 세우고 있고 기업들이 자구책을 강화하면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외환시장이 연일 요동치며 미친 듯이 오르고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을 안심시키지 위해 한 말이겠죠.
위기 심리가 위기를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발언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말만이 아니라 정부의 대응 방식이나 상황인식도 이 상황을 그저 '소나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지금이 IMF 위기(IMF에서는 97년 외환위기를 IMF 위기라고 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더군요)와는 다르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다르냐에 대해선 낙관적으로만 보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좋은 쪽으로 다른 이유는 물론 지금은 외환위기 당시보다 10배가 넘는 세계 4위 수준의 외환보유고 2천 4백억 달러 정도를 갖고 있다는 점이죠. 또, 외환위기 당시에는 전경유착과 허술한 심사로 갚을 능력이 없는 기업들에게 엄청난 대출을 해 줘 기업들이 부채비율이 높았지만 지금은 부채비율이 낫다는 점도 다릅니다.
그런데 나쁜 쪽으로 다른 이유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현재 위기는 미국에서 폭발해 유럽,일본을 거쳐 신흥국가로 퍼져나가는 글로벌 위기이고 어느 나라도 이 위기에서 안심할 수 없습니다. 자기 코가 석자라는 이야기죠. 혹시 우리가 외환 위기처럼 위기를 맞는다고 해도 우리를 지원해 줄 여력이 있는 나라가 없다는 뜻입니다. 강만수 경제팀은 이성태 총재의 한국은행이 외환보유고를 적극적으로 풀지 않는다고 여기 저기서 불만을 터트리고 있던데 아무도 우리를 도울 수 없는 여건이라면 지금 섣불리 외환보유고를 대량으로 풀기보다는 신중히 대처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외환 보유고 곳간을 연다고 지금 환율이 금새 안정될 수 있는 국제 금융시장의 여건도 아니고 지난 글(☞ '이제는 외환보유고 전쟁이다')에서 쓴 것처럼 앞으로 우리 경제 여건이 외환보유고를 채워넣을 수 있을 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4분기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되면 안정을 찾을 것이란 시각인 것 같던데 지금은 '소나기'가 아니라 언제 '집중 호우'가 수시로 내릴 지 모르는 '기나긴 장마'라고 봐야 합니다.
둘째,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세계 각국이 유례없는 안정화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금융시장의 공포는 변함이 없습니다. 단지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전염병 환자(부실금융기관)'들이 병을 퍼트려 한 나라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기때문입니다. 갈수록 강도높은 조치들이 나오고 있는데 점점 더 정책의 약발은 먹히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미 FRB가 베어 스턴스에 이례적으로 자금지원을 해 줄 때는 2달은 버텼던 주가가 프레디맥, 페니매를 국유화 할 때는 몇 주만에 폭락했고, AIG에 850억 달러 구제금융을 지원한 날에는 하루도 버티지 못했습니다. 구제금융법안(7천억달러+감세 천 100억 달러)이 통과됐는데도 금융시장은 공포 속에 빠져있고 ,실물경제에서는 부도 위기와 경기침체 전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IMF는 미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0.1% 수준일 것이란 수정된 전망치를 내놓았고, 세계 경제도 당초 내년 3.7% 성장률에서 3% 성장률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한국 역시 전망치를 낮춰 3.5% 성장률로 전망했습니다.
특히 8일에는 글로벌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로 일본 닛케이 225지수가 초유량 기업인 도요타 주가의 폭락을 시작으로 20년만에 무려 10% 가까이 폭락했습니다. 그러자 미국과 영국,유럽 등 주요 중앙은행들이 8일 밤 긴급히 기준금리를 0.5% 포인트씩 동시에 낮췄지만 '동시 금리인하'만으로 이미 실물 경제까지 전염된 위기를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엄청난 대책이고 보통의 단기 위기였다면 한동안 증시폭등을 가져올 조치이기는 하지만 이미 단기금리가 0% 수준에 이른 상황에서 2% 수준이 미국의 기준금리를 1.5%로 낮춘다고 얼마나 달라질 지 의문입니다.
더욱이 현재 GE나 AT&T 같은 초우량 기업들도 돈을 구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 기업어음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더 그렇습니다. 2007년 미국의 기준금리가 5.25%였을 때 한 달짜리 A2 기업어음 금리가 5.4%였는데 기준금리가 무려 2% 수준으로 떨어진 6일 기업어음 금리는 위기 전보다 오른 5.61%였습니다. 기준금리가 '기준'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죠.
하지만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이 상황을 '대공황' 수준으로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사표시를 확실히 한 셈이고 더욱 극단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신호를 줬다는 점에서는 금융시장이 조금 냉정을 찾아 망할 기업과 초우량 기업, 부실이 크지만 살려두면 갚을 수 있는 은행과 그렇지 못한 은행을 구별해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동시 금리인하' 라는 조치조차 며칠 버티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면 아일랜드가 했던 것처럼 미국도 주요 은행들의 부채와 예금을 국가가 보장해 주는 더 극단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지 모릅니다.
이렇게 지금의 위기는 진짜 "IMF 때와는 다른" 위기입니다. 그리고 정책당국이 환율 대책을 몇 차례나 내놓고 은행장들과 긴급 회의를 해 '엄포'를 줘도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 현 경제팀에 대한 신뢰도 없는 상황입니다.
강만수 장관 본인 주장대로 지난 3월 한 차례만 외환시장 개입발언을 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시기가 바로 새 정부 경제수장이 어떤 이야기를 할 지 시장이 온통 신경을 쓰고 있던 때였고 그 뒤 환율이 요동칠 때도 자신의 발언을 수정하지 않았다는 점, 그러다가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물가급등이 여론의 화두가 되자 이제는 환율을 낮추야 한다는 정반대 입장을 밝힌 사실을 시장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장 참가자들은 상황을 '장마'로 보고 있는데 '소나기'라고 주장하는 경제장관의 말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강만수 장관과 경제팀의 말과 행동이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오며 시장에서 위기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의 자회사 Moody's Economy.com 보고서
대공황 당시 기존 경제학자들이 손을 놓고 멍하니 있을 때 기존 이론을 다 바꾸며 해결책을 제시했던 경제학자 케인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관계가 바뀌면 나는 생각을 바꿉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When the facts change, I change my mind. What do you do sir?")
바로 강만수 경제팀에게 묻고 싶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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