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이 공개 장소에서 모습을 감춘 지 51일 만에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고 북한의 언론매체들이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민주조선과 같은 활자매체 뿐 아니라,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같은 라디오 매체, 조선중앙 TV까지 일제히 이 소식을 보도했는데요.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김 위원장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조선중앙 TV의 경우 무려 3분 20초에 걸쳐 이 소식을 보도했는데, 3분 20초라는 긴시간을 오로지 아나운서 얼굴로만 방송하는 진기한 방송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정말로 축구장에 나오기는 나온 것일까'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보도 내용 중에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경기를 보게 된 참가자들의 가슴가슴은...'과 같은 구절이 있는 걸로 봐서, 김 위원장이 축구장에 나온 것으로 보는 것이 일단은 타당할 것 같습니다. 다만, 김정일 위원장이 일반 참가자들과 함께 옆자리에 앉아서 축구경기를 봤을 리는 없는 만큼, 귀빈석 위쪽의 먼 곳에서 일반 관객들에게 모습을 잠깐 보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여주기에는 아직 건강상태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멀리서나마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건재를 과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확한 사실관계야 어떻든 김 위원장의 모습이 화면으로 공개되지 않으면서 김정일 건강이상설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는 모습입니다. 오히려 의문이 증폭되는 양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런 방식의 보도를 강행했을까요.
무엇보다도 건강이상설의 확산을 차단하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제가 9월말에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도, 알만한 사람은 거의 다 김정일 건강이상설에 대해 알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이러한 얘기가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퍼져가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최고지도자의 신상과 같이 금기시되는 소문은 보다 증폭되고 변형된 형태로 급속히 확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북한 당국으로서는 주민들의 동요를 막고 파문을 진화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 한가지 이유를 들자면, 10월 6일(월)부터 시작되는 한 주 동안 김정일 위원장의 등장을 주목하게 하는 주요 행사가 몰려있다는 점이 북한 당국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10월 8일은 김정일 위원장이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된 지 11주년이 되는 날이고, 10월 9일은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지 2주년, 10월 10일은 조선노동당이 창당된 지 63주년이 되는 날인데, 지난 4-5년을 살펴보면 이 무렵을 전후해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이 여러번 보도됐습니다. 따라서, 북한 당국으로서는 이번 주 안에 김 위원장의 모습을 공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데, 이번 축구경기 관람 보도로 인해 그러한 압박감은 상당히 완화됐습니다. 이미 공개활동이 한번 보도된 이상, 노동당 창당 기념일에 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계속 호전되고 있다 하니, 언젠가는 김 위원장의 얼굴이 다시 공개되겠지만, 그 시점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건강이상설의 확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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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에서 흔히 '안박사'로 통하는 안정식 기자는 95년 SBS 공채 5기로 입사해 지금은 통일부 출입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통일 문제, 북한 정세와 관련한 오랜 취재와 함께 관련 연구로 박사 학위까지 받은 학구파 기자로 전문성과 깊이있는 분석이 담긴 기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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