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현 정권은 출범 석 달만에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높던 콧대는 사상 초유의 촛불집회 앞에 여지 없이 꺾였고 대통령까지 나서 몇 번이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런 폭발력이 종부세 안에 숨어 있다. '불경기와 양극화로 덧나있는 민심의 폭발', 여당인 한나라당이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쇠고기 사태 때보다 더한 촛불민심에 직면할 수 있다"며 종부세 개편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여당의 이런 고민은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해 지난 23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박희태 대표가 정상적인 세제가 아닌 종부세를 개편하는 것은 국민에게 약속한 대선공약이라며 개편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곧이어 열린 비공개 자유토론에서 두 시간 반 가까이 격론이 벌어졌다. 강남권의 이종구(서울 강남) 고승덕(서울 서초) 고흥길(성남 분당) 유일호(서울 송파) 나성린(비례대표) 의원은 이중과세를 막고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해야한다며 종부세를 완화하는 정부안에 적극 찬성입장을 나타냈다.
반면 비강남권의 김성태(서울 강서) 김성식(서울 관악) 유기준(부산 서구) 이주영(경남 마산) 이명규 (대구 북구) 원희룡(서울 양천) 의원은 부자정당으로 낙인찍힐 정책은 수용할 수 없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했다. 특히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이 시기에 대다수 서민들의 감정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종부세 개편을 서두를 필요가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당론을 확정짓지 못한 채 의원들을 상대로 무기명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틀 뒤 또 다시 정책 의총이 열렸다. 두시간에 걸쳐 17명이 발언에 나서 이 가운데 절반을 휠씬 넘는 12명이 찬성이나 조건부 찬성입장을 밝혔다. 반대는 5명 뿐이었다. 반대가 더 많았던 전과는 사뭇 달랐다. 당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원안 통과를 거듭천명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로 23일 의총 때 반대의견을 냈던 한 친 이명박계 의원은 "대통령이 (종부세를) 바로잡겠다는 원칙이 확고하기 때문에 원안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끝내 공개되진 않았지만 무기명 설문조사에서도 찬성 65% 반대 35% 정도로 찬성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은 이런 의견을 모아 오는 29일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론을 확정지을 계획이다. 당내에서는 입법예고까지 한 정부안을 수정하기는 힘들지 않겠냐는 의견이 대세다. 일단 정부안을 수용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론의 역풍을 피할 묘수는 뭔가? 바로 시간이다.
이번 종부세 개편의 가장 큰 쟁점은 부과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높이는 문제다. 하지만 이 사안은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맞물려 있다. 현재 세대별로 매기게 돼 있는 종부세가 위헌으로 판결나게 되면 인별합산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예를 들어 남편 명의로 돼 있던 집을 부부명의로 바꾸면 한 사람당 6억씩, 12억이 넘어야 종부세 부과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도 굳이 여론의 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종부세를 바꿀 이유가 없게 된다.
따라서 정부안이 국회로 넘어오더라도 헌재 판결이 날 때까지 법안심사를 기다리면 된다. 다음 달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되니까 국회가 통상적인 법안들을 심사하려면 11월은 돼야한다. 바로 그 11월쯤 헌재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절묘한 타이밍인 셈이다. 정부안이 넘어와 심사해야할 때쯤 위헌 판결이 나면 정부와 낯붉히지 않고도 정부안을 수정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위헌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한나라당의 판단이다. 설사 위헌 판결이 나지 않는다해도 그 때 사정봐서 심사하면 그만이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한나라당에게 종부세는 계륵(鷄肋)이다. 대선공약으로 폐지를 약속한 사안이다. 하지만 절대 다수 서민 감정을 생각하면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 지금은 더욱 그렇다. 시간은 벌었다. 타이밍도 괜찮다. 하지만 당내 초선모임인 '민본 21' 반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상황에서 야당의 공세를 뚫고 어떻게 이 일을 마무리 지을지... 거대 여당 한나라당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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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예리한 시각과 꼼꼼한 취재가 돋보이는 남승모 기자는 2000년 SBS 공채 8기로 입사해 사회부,경제부를 거쳐 정치부 정당 출입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적극성으로 복잡한 정치 현장의 맥을 짚어주는 기사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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