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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파산과 그림자 은행(Shadow Bank)의 몰락

지난 주 산업은행이 미 대형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와의 매각 협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을 때 몇몇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은 "아쉽다"는 평을 했습니다.

"위기도 있지만 그만큼 기회다. 우리가 언제 자산 규모 세계 4위 투자은행을 인수해 보겠냐" 는 것이 주된 논거였다. 최근 어떤 CF에서처럼 '노력해서 세계 일류가 될 수도 있고 세계 일류 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는 뜻일 겁니다. 아이러니하게 미국의 대형 중장비 업체 '밥 캣'을 인수해 미국인들을 충격에 넣었던 이 한국 기업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인수 비용에 '루머'까지 맞물려 곤욕을 치른 뒤 건전성에 대해 적극 해명에 나서기도 했죠.

이런 주장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세계 경제, 특히 미국 금융 상황이 정상적이거나 조금 위기 정도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상황은 그런 수준이 아니라고 봐야합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자산 규모 세계 4위 투자은행인 158년 역사의 '바로 그' Lehman Brothers가 파산보호(Chapter 11) 신청을 했습니다. 망한 거죠. 만약 산업은행이 리만을 인수했더라면? 리먼 브러더스의 천문학적인 금융부실이 고스란히 우리 금융시장으로 '수출' 돼 미국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나눠 갖는 상황이 시작됐을 겁니다. 리만만이 아닙니다. 자산규모 세계 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도 BOA(Bank Of America)에 인수될 예정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부펀드인 KIC가 투자해 테마섹에 이어 2대 전략적 주주 위치에 있는 그 회사입니다.

우리 국부펀드가 인수과정에서 손실을 볼 지 이익을 볼 지는 인수협상 과정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겠죠. 우리 주식을 인수해 준다면 인수가격으로 볼 때 이익일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결과는 며칠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도대체 지금 미국 금융시장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위기가 해결되는 과정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걸까요? 차분히 들여다보면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시간을 77년 전 대공황으로 돌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대공황 시절 주택시장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을 위해 연방정부 산하 기관으로 만들어 나중에 민영화 시켰던 모기지 업체 '프래디 맥'과 '페니 매'는 최근 다시 국유화 됐습니다. 1931년 은행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예금주들이 너도나도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인출하려 한 'Bank Run' 현상이 지금 미 투자은행을 중심으로 한 그림자 은행시스템(Shadow Banking System)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공황 당시 정부는 은행들의 부실을 세금으로 감당해 주면서 '뱅크 런'을 막았고 이후 이를 근거로 은행에 대한 '건전성 규제'와 '감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베어스턴스, 리먼 브러더스, 메릴린치 등 투자은행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규제할 수 있다" 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규제를 거의 하지 않았고 금융이 과도하게 발달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경제에서는 위험있는 사업에 대한 대부분의 자금 조달은 바로 이 '그림자 은행'이 담당하게 됐습니다. 이들은 '파생상품'이라는 첨단 금융기법으로 "위험을 최소한으로 회피했다"고 자랑했습니다.

문제는 '진실의 순간'이 돼 뚜껑을 열어보니 '회피했다던 위험'은 천문학적으로 커져 있었고 '파생상품'이라는 혈관을 통해 세계 곳곳에 '전염' 돼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위험의 대상이 '부실투성이 주택담보 대출' 이 됐든 '우량 채권'이 됐든 진실이 알려지고 Shadow Banking System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자 이제 'Shadow Bank Run'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신뢰가 근간인 금융시장에서 아무도 서로를 믿지 않고 돈을 빌려주거나 빌리지 못하고 우량 채권도 '터무니 없이 높은 이자' 가 아니면 거래되지 않고 있는 상황, 그래서 우리가 외평채 10억 달러 조차 발행하지 못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는 현실, 이것이 지금 세계 금융시장이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위기는 결국 '그림자 은행 시스템'(Shadow Banking System)의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고 대공황 시절 처럼 다시 납세자들의 천문학적인 돈이 그들의 위험한 도박으로 인한 파국을 막는데 쓰여지게 될 것이고 벌써 쓰여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로 끝날 수 없고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부실의 전염 규모'에 따라 유럽,중국,일본, 우리나라 등을 시차를 두고 강타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첨단 금융기법'을 자신하고 '공격적'으로 영업했던 금융회사일 수록 타격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희망이라고 한다면 대공황을 전공한 저명한 경제학자인 벤 버냉키 교수가 미 FRB를 책임지고 있어 미국 납세자의 부담이 얼마가 되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버냉키 교수는 학자시절 대공황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서 초래한 것이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폈던 사람이기때문입니다. 다만 미 납세자의 부담은 미국 경제의 부담으로 남을 것이고 향후 미국 경제의 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죠.

이런 여건인데도 우리 금융계에는 '용감한' 분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건전성'과 '위험관리'에 있어서는 초보적 수준인 우리 금융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메가뱅크론'을 들고 나오거나 국민의 미래를 위한 자산인 연기금을 공격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모습에서 미 투자은행들이 잘 나가던 시절의 '용감함' 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해 주고 있다'는 바로 그 '미 금융 시장'이 실패(Market Failure)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과잉 금융상품을 바탕으로 전성기를 구가해 온 미국 금융시장이 지금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금융시장에서 중요한 무엇보다 '건전성'과 '위험 관리'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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