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람사르 협약 '1호 습지' 용늪에 가보니..

개통발과 비로용담, 왕삿갓사초...

국내 유일의 고층습원(高層濕原)인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용늪(면적 1.06㎢)에서만 발견되는 희귀 식물들이다.

오는 10월 경남 창원에서 열리는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를 앞두고 지난 10일 둘러본 용늪은 4천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태고의 신비' 를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때마침 날이 좋았다. 연중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 90일 정도라는데 그날따라 따가운 가을 햇살에 넉넉한 품을 완전히 풀어헤친 채 멀리서 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았다.

산정에서 폴짝 뛰어내리면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아슬아슬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용늪은 사실 고저넉한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일반인의 접근을 쉬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꾸불꾸불한 산길이 험해 4륜구동이 아니면 접근이 어려운데다 비무장지대(DMZ) 내에 둥지를 틀고 있어 군당국의 사전허가도 받아야 한다.

습지로는 드물게 해발 1천280m의 고산지대에 자리잡고 있어 산개구리와 복숭아순나방붙이 등 224종의 동물과 끈끈이주걱, 산사초 등 191종의 식물이 관찰되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식물의 유해가 완전히 부패 또는 분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흙과 함께 퇴적한 지층인 이탄층(泥炭層)을 최고 180㎝의 두께로 깔고 있다.

낮은 기온에다 빈약한 영양상태로 인해 식물의 생육기간이 짧고 수질의 산성이 유지되는 까다로운 조건에서만 발달할 수 있는 것이 이탄층이다.

그래서일까. 용늪은 산사초와 애기황새풀, 물이끼, 개통발, 비로용담 등 잎이 뾰족해 많은 영양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온갖 습지 식물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공존의 땅'이었다.

상대적으로 키가 큰 억새풀 사이로는 고고한 얼굴을 수줍은 듯 살포시 감추고 있는 조름나물과 제비동자꽃, 기생꽃 등의 멸종위기종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습지가 특별히 중요한 것은 지표면의 5%에 불과하면서도 지구 전체 온실가스의 20%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용늪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주광영 박사(양구군청 소속)의 설명이다.

특히 용늪은 과거 한반도 식생의 변화상을 추적할 수 있는데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 식물도 많아 생태적 가치가 더욱 우수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인 환경을 인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용늪도 예외가 아니다.

거대한 온실가스 저장고의 가공할 폭발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습지의 보전이 절실한데 아쉽게도 용늪은 이미 상당 부분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모습이었다.

군 작전도로에서 흘러드는 토사와 부대에서 배출되는 각종 오염물질로 인해 수십년간 꾸준히 육지화, 건조화가 진행돼 왔던 것이다.

아래 쪽 큰 용늪은 그나마 덜하지만 군부대 막사와 인접한 작은 용늪은 육지화와 함께 달뿌리풀 등 주변의 육상식물에 뒤덥여 더 이상 습지라 부를 수도 없을 정도였다.

주 박사는 "이탄습지는 영양분이 부족해 잎이 넓적한 식물이 자랄 수 없는데 작은 용늪에서는 더 이상 잎이 뾰족한 식물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한 상태에서 용늪 보존의 '일등공신' 역할을 해왔던 군부대가 용늪 훼손의 주범이라는 양면성을 갖게 된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육화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환경부가 추진중인 육군과의 군부대 이전협의가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

육군은 해당 지역의 작전성 검토 결과 군부대를 이전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현재 예산을 어느 쪽에서 부담하느냐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환경부는 부대가 이전하는 대로 작전도로를 친환경적 소재로 포장하고 도로 사면과 나출지는 본래 식생을 복원해 토사의 유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등 육화방지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용늪은 그러나 환경 훼손은 쉽지만 복원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시간과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거듭 각인시켜 줄 것으로 보인다.

주 박사는 "큰 용늪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작은 용높이 큰 용늪처럼 변할 수 있을 지, 그렇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