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부녀가 히로뽕을 28㎏이나 만들 수 있는 많은 감기약을 미국의 마약 제조업자에게 밀수출했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검찰에서 뒤집혔다.
경찰은 희대의 부녀 마약사범을 붙잡았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약사의 딸을 구속까지 했던 터여서 애먼 사람을 10여 일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12일 검·경 등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윤모(67) 씨는 작년 한 지인으로부터 수출용 감기약 S정 2억원 어치를 제약업체를 통해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거래로 큰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기대한 윤 씨는 이 약을 만드는 C사에 대금을 넣고 2억 원 어치, 700박스를 제작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주문을 한 사람은 어찌 된 영문인지 연락이 끊겨버렸고 윤 씨는 엄청난 양의 재고를 떠안게 된 바람에 큰 자금 압박을 받게 됐다.
이런 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된 윤 씨의 딸(35)은 아버지 대신 감기약을 팔아보겠다고 나서 작년 8∼10월 '알리바바' 같은 인터넷 상거래사이트에 S정을 판다는 글을 올려 3차례에 걸쳐 5박스를 팔았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팔아서는 여전히 695박스나 남은 약을 모두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느껴 윤 씨 부녀는 이마저도 포기하고 떠안은 약을 고스란히 창고에 쌓아뒀다.
그런데 1년이 지난 8월11일, 난데없이 윤 씨 집에 경찰관들이 들이닥쳐 딸을 체포해갔다.
미국에 팔았던 감기약이 화근이었다.
윤 씨 부녀로부터 감기약을 사간 미국인이 이 약을 갖고 히로뽕을 제조하다 현지 마약국에 붙잡혔는데 "약을 판 사람이 이 약으로 마약을 만들 수 있다며 제조 방법까지 알려줬다"고 진술했던 것이다.
우리 경찰은 미국 당국으로부터 넘겨받은 수사 기록을 바탕으로 윤 씨 부녀가 계획적으로 역할을 분담해 약을 사고 수출하는 부녀 마약사범일 것이란 확신을 갖고 수사를 벌여 8월15일 윤 씨 딸을 구속하고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윤 씨 부녀에 대한 추가 조사를 벌인 결과, 문제의 감기약이 누구나 법의 제한을 받지 않고 수출할 수 있는 품목인데다 윤 씨 부녀가 갖고 있던 물량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팔다 이마저도 사실상 중지했던 점 등에 비춰볼 때 경찰의 수사가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김주선 부장검사)는 결국 8월25일 윤 씨의 딸의 구속을 취소하고 석방 조치한 데 이어 윤 씨 부녀가 히로뽕 원료로 쓰일 것을 알고 감기약을 수출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9월11일 이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다만 윤 씨의 딸이 감기약을 실제 품목과 달리 학용품이라고 적어 배편으로 상대방에게 보낸 것에 대해서는 관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벌금형에 약식기소했다.
윤 씨 부녀를 변호했던 하윤홍 변호사는 "마약원료 수출 혐의가 인정되면 최소 10년 이상 징역의 무거운 죄인데도 경찰이 미국 수사기록만 보고 선입견을 갖고 윤 씨 측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