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검참과 경찰, 기무사 및 국가정보원 등 합동수사본부가 발표한 여간첩 사건은 과거 간첩사건과는 완전히 달라진 양상을 보여준다.
과거 남파 간첩들은 위조된 신분증으로 남한 사람인 것처럼 위장하거나 제3세계 외국인으로 국적을 세탁하고 무전기와 난수표를 이용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뒤 북한이 보내준 공작금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이번에 적발된 간첩 원정화(34.여)는 탈북자로 위장해 대북 무역사업을 하며 중국과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공작자금을 스스로 벌어 쓰는 것은 물론 난수표 대신 휴대전화로 지령을 받았다.
이는 지난 10여 년 간 햇볕정책 등에 따른 남북화해 무드와 남한에 정착하는 탈북자 및 중국동포 노동자의 증가, 대북무역의 개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합수부는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특징으로 남파 간첩이 탈북자로 위장한 사례를 처음으로 밝혀냈다는 점을 꼽았다.
지난 10년간 적발된 남파 간첩은 2006년 7월 체포된 정경학(50)이 유일하다. 그는 태국인 등 동남아인으로 국적을 바꿔 침투했던 반면 원정화는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속여 한국 남성과 결혼해 입국한 뒤 탈북자로 위장 자수했다.
또 임신 7개월의 상태에서 잠입해 국내에서 출산.양육하면서 반공개적으로 간첩 활동을 하는 등 과거의 전형적인 간첩과는 완전히 다른 행태를 보였다.
과거 남파 간첩들이 특정 지역 사투리를 학습한데 비해 탈북을 가장하면 북한 말씨를 쓰면서 남한 사정에 다소 어둡더라도 의심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적극 활용했다고 공안당국은 설명했다.
원씨는 우리 정부로부터 정착금 3천700만원과 매달 생계비 70만원을 받는 등 모두 1억원에 가까운 돈을 지원받았고 탈북자 신분을 역이용, 대북 무역사업을 통해 합법적으로 돈을 벌어 북에 송금하는 등 `자립형 간첩'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지원금 등으로 5만5천달러(약 5천500만원)를 만들어 동생이 북한 청진에서 운영하는 외화 상점에 투자를 하기도 했다.
또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현역군인을 소개해달라고 한 뒤 군인들을 사귀며 정보를 빼내고 50여 차례나 군 안보 강연에 나서 은연중 북한을 옹호하는 내용을 전파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물론 한국에 들어와서도 여러 남자와 관계를 가지며 간첩행위를 위해 성(性)을 도구화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사건은 특이하다.
더구나 원씨는 과거의 간첩과 달리 무전기 및 난수표 사용법을 모른다.
우리나라 여권으로 중국을 14차례, 북한에 3차례나 들락거리며 지령을 받았고 평소 대북무역을 이유로 재중 보위부와 간단한 암호를 섞어 수시로 공중전화나 휴대전화로 통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
합법 공간에서 합법 수단을 이용해 활동을 한 셈이다.
심지어 국경지대의 브로커를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과 한국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기도 했다.
아울러 원씨가 북한 보위부의 지령을 받아 남파된 것은 반체제자 색출 업무 등을 주로 하던 북한 보위부의 활동 영역이 탈북자들이 늘어나면서 중국, 남한까지 확대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도 이번 사건의 특징이다.
따라서 간첩의 패러다임이 바뀐 이번 사건은 우리 당국에 여러 과제를 남겼다.
자유를 찾아 탈북한 `새터민'에 대해서는 조기 정착을 위한 지원을 계속하되 이들에 섞여 침투하는 불순분자를 효과적으로 적발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고위 인사와 반체제 탈북 인사에 대한 보복 위협 및 국내외 군인.사업가.정보요원 등을 상대로 한 유인책 등을 차단하고 이들을 보호할 효과적인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