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달러와 국가 체제 정비를 통해 강대국으로 부활한 러시아와 남오세티야 문제로 전쟁을 벌였다 사실상 '패배한' 그루지야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운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는 13일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인 프랑스의 중재로 그루지야와의 평화안에 합의했지만, 사카슈빌리 대통령을 대량학살을 저지른 '전범'으로 규정, 국제재판에 회부하겠다는 심산을 숨기지 않고 있다.
앞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11일 "전쟁범죄 자행을 명령해 남오세티야내 러시아 평화유지군을 비롯해 러시아 시민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은 러시아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도 같은 날 "후세인은 시아파 마을 몇 개를 파괴해 교수형에 처해졌다"며 "그루지야 지도부는 탱크를 앞세워 어린이와 노인들을 밀어 붙이고 사람들을 집에서 산 채로 불태웠다. 이들 지도부가 보호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강력 비판했다. 러시아 당국은 남오세티야인 피해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러시아는 2004년부터 인구 460만명의 그루지야를 이끌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추진해온 친미성향의 사카슈빌리를 제거함으로써, 주변국들은 물론 서방측에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나아가 사카슈빌리에 대한 전범 재판까지 추진함으로써 다목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미국을 위시한 서방 측이 러시아의 재판 회부에 찬성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발이 묶여 그루지야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한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다양한 제재검토에 나섰고, EU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지만 일단은 미국과 보조를 맞춰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사카슈빌리의 운명이 그루지야 국민에게 달려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는 믿었던 서방측 지원이 없어 패배한 마당에 기댈 곳은 자국민밖에 없다고 판단한 듯, 12일밤 수시간 동안 수도 트빌리시에서 10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관제' 성격의 시민 궐기대회에서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며, 여기서 다윗은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그의 격앙된 목소리는 연설 내내 계속됐다.
그러나 약소한 군사력으로 강대국 러시아에 맞선 것은 지나치게 과감한 시도였고 그 결과 그의 통치기반이 약화됐다는 목소리가 그루지야에서 드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분쟁 중재를 위해 러시아와 그루지야를 방문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대변인실 관계자는 13일 국민 지지를 과신해온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대중의 덫에 빠졌다"며 "그의 잘못으로 그루지야는 공격을 받아 가루가 됐다"고 말했다.
샤카슈빌리의 정세 판단 잘못 때문에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국토가 황폐화됐다는 비판론이 내부에서서서히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 말과 올해 초 그의 독재정치와 대러관계 악화를 정면 비판했던 그루지야 야권이 봉기, 그의 축출을 재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현재 그루지야의 분위기상 사카슈빌리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한다고 해도 지지율이 급락, 조기 선거나 또다른 혁명을 통해 사임 또는 자진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국제재판을 통해 사카슈빌리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게 최선이지만 그가 국내사정으로 물러나게 되는 경우도 괜찮은 시나리오로 여기고 있다. 나아가 국제재판이 무산되면 사카슈빌리의 축출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할 수도 있다.
사카슈빌리 자신은 전쟁의 시작과 진행과정에서는 물론 향후 자신의 입지 결정에도 미국 등 서방측 이 핵심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 서구와 러시아 간 대립구도를 부추기며 지지를 얻고자 애쓰고 있다.
그는 지난 11일 서방언론을 통해 러시아의 목표는 자신의 축출이라고 규정하면서 러시아는 남오세티야 독립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자원 통제권 확보를 위해 전쟁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자원 언급은 자원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카스피해 원유를 러시아를 우회해 유럽으로 실어나르는 바쿠(아제르바이잔)-트빌리시(그루지야)-세이한(터키) 송유관(BTC)과, 카스피해 가스를 역시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유럽으로 보내는 바쿠-트빌리시-에르주룸(터키) 가스관을 염두에 둔 것.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자원확보를 둘러싸고 카스피해와 주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와 각축하는 서방측이 러시아와 협상시 에너지 자원 문제를 감안해줄 것을 주문한 셈. 즉 자신이 서방측 에너지 자원확보를 위해 이기지도 못할 러시아와 싸운 측면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그루지야와 사카슈빌리의 운명은 맞물려 있으며, 러시아의 카프카스 지역 영향력 회복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러시아 간 줄다리기 협상 결과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알마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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