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월요일.. 18대 국회 임기가 개시된지 73일동안 여야 대치속에 파행됐던 국회가 여야간 합의로 정상화의 물꼬를 튼 날입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주재한 한나라당, 민주당, 선진창조모임 등 3개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이 13일까지 상임위원장 배분을 조율하고 14일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거쳐 19일 본회의에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기로 합의한 것이죠.
청와대의 장관 임명강행과 총리의 국회 쇠고기특위 출석 거부 등으로 인해 민주당과 민노당이 그동안 요구해왔던 대통령의 사과 문제도 한나라당 대표의 유감 표명으로 야권이 양보했죠. 여당 단독 원구성 강행을 공언하며 야당을 압박해왔던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당 대표에게 적극 건의한다는 원칙도 합의하면서 야권의 면도 세우려는 시도가 보입니다. 여하튼 비난 여론에 등떠밀린 모양새이기는 하지만, 모처럼 여야가 시원하게 원구성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지요.
그런데 합의가 이뤄진지 불과 2시간도 안돼서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민주당이 가축법 개정안 처리 문제를 원구성과 연계하고 나섰고, 선진당은 법사위를 포함해 상임위 2곳을 요구하고 나선거죠. 지난 7일에 이어 어제 다시 소집된 쇠고기 특위도 결국 총리의 거듭된 출석 거부로 여야간에 막말 공방만 주고받다가 파행하고 말았고 총리의 국회 출석 문제를 놓고 여야 원내대표가 설전을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막힌 국회길 시원하게 뚫어보자고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함박 웃음을 짓던 여야 원내대표는 불과 2시간만에 서로 얼굴을 붉히며 고성을 주고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 거지요.
국회의 이런 모습이 어디 하루 이틀이냐는 분들도 계시겠죠. 그만큼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크다는 얘기일 겁니다. 16대 국회때 만났던 중진급 정치인들 얘기는 대개 "요즘 정치에는 낭만이 없어"라고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요즘 만나는 중진 정치인들은 "요즘 정치에는 정치가 없어"라고들 합니다.
실제로 취재기자들이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지난 16대 국회.. 부패정치, 부조리 정치, 고비용 저효율 정치라는 비난을 많이 받던 그때.. 여야간에 조율은 지금같은 원내대표가 아닌 원내총무들이 맡았습니다. 여야의 원내총무들은 치고받고 싸워서 조율한 안을 들고 당 대표를 찾거나 전화로 추인을 받습니다. 여야 당 대표 밀고 당기기의 대리 전쟁 같은 거지요. 그 당시 여야간에 큰 쟁점이 있을 경우에는 여당 원내총무가 맡는 운영위원장실에는 여지없이 제대로 앉기 조차 어려울 만큼 많은 기자들이 포진해 있고, 그 사이를 야당 총무가 뚫고 들어가 여당 총무와 3-4평짜리 방안에 단 둘이서 마주 앉습니다. 문틈 사이로 서로 고성이나 욕설도 흘러나오곤 합니다.
하지만, 싸움은 기자들을 통해 자기당 대표와 의원들을 속이기 위한 위장일 때도 있습니다. 욕설을 한 10분쯤 주고 받가가 2시간 넘도록 조용해집니다. 기자들도 긴장되지요. 뭔가 되나보다하고 말이죠. 사실은 방안에서 두 총무는 과일 먹고 바둑 두면서 자기네 당 대표에 대한 뒷담화(?)를 늘어놓기도 하고, 서로 교섭의 총대를 메야 하는데도 오는 고충을 털어놓으며 동병상련을 나눕니다. 실컷 놀다가 문이 열리고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쏟아지면 야당 원내총무는 여당 총무를 향해 크게 욕설과 비난을 퍼부으며 완전 범죄를 만듭니다.
때로는 여야 원내총무가 교묘하게 미리 시나리오를 짜서 한쪽은 강행 처리하고 다른 쪽은 몸싸움하면서 말리기로 합니다. 자당 의원들한테 욕먹지 않는 강한 총무로 각인되면서 동시에 각당 대표들의 추인을 받기 힘든, 그렇기 때문에 서로간에 교섭을 통해서는 도저히 좁히기 어려운 쟁점을 그런식으로 여야 원내총무가 각본을 만들어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벌이기도 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제 18대 국회.. 원내대표는 지금껏 5번도 안 만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8대 국회 잘 이끌어보자며 제주도행 비행기안에서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신혼부부같은 모습을 연출하던 것도 결국은 언론용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써도 할말 못할 처지가 됐습니다. 여야 원내대표는 각당 대표의 추인보다 각당 의원들의 눈치보기가 바쁩니다. 옛날 원내총무들처럼 짜고 치는 고스톱 잘못 벌였다가는 속된 말로 피박에 광박, 독박까지 쓰게 됩니다. 결국 여든 야든 당내에 목소리가 큰 강경파들의 입김이 더 작용하게 되고 그만큼 원내대표의 입지는 좁아집니다.
여야가 약속한대로 다음주 19일까지 원구성이 마무리되고 밀려있는 민생 현안 특히, 고유가 대책과 세금 감면 등의 조치들이 하루 빨리 처리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옛날같은 여야 총무간의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꼼수 정치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원내총무보다 훨씬 막강해진 자신들의 권력을 토대로 상대 당 카운터파트와 자당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 최적점을 찾아내는 절충과 타협의 묘.... 진정한 정치를 기대해 봅니다.
|
[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 |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