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 시작 2시 45분, 종영 4시 39분, 6분 빠진 두 시간- 114분?’
“어라?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되네. 이게 그렇게 긴 영화가 아닌데…….”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가까운 멀티플렉스에서 [월.E]를 관람하려고 받아든 표에 적혀 있는 상영시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보도 자료를 확인해 보니 상영시간은 104분이더군요.)
그 의문은 상영관에 앉아 영화를 기다리다보니 풀렸습니다. 바로 어마어마한 양의 광고와 예고편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을 재보니 상영시작 시간이 지나고도 12분 동안 계속되더군요. 보통 상영시간 10분전부터 시작하는 것을 합하면 20분이 넘게 광고를 트는 것입니다. 처음엔 재미있게 보던 아이들도 ‘언제 시작해?’하고 보채기 시작하고 광고가 계속되는 동안 객석 여기저기서 짜증 섞인 한숨이 들리더군요.
지루해 할까봐 영화 예고편과 광고를 섞어 놓는 편성의 묘(?)를 발휘하기도 했지만 인내심 테스트 하는 것 같더군요. 더 기가 막힌 것은 전체관람가인 애니메이션이라 어린이들도 많은 상영관에 버젓이 선남선녀들이 "캬~" 거리는 술 광고까지 트는 것 이었습니다.
영화가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광고를 보는 것은 제대로 된 짜증을 불러일으키며 관람객 편의를 최우선으로 무시하는 극장 측의 처사에 할 말을 잃게 되더군요. 방송의 경우 (시청료를 받는 KBS1TV는 예외로 하고)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을 무료로 보는 대가로 광고를 봐야 하는데 이마저 보기 싫으면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극장측이 관람료를 지불한 뒤 영화를 보겠다고 들어온 관객들을 극장 좌석에 볼모로 붙잡고 광고를 억지로 퍼 먹이는 것은 ‘고문’ 수준이라는 생각입니다. 예민한 관객이라면 이런 짜증과 불쾌함 때문에 정작 영화 감상을 망치는 경우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담당 기자로 각 멀티플렉스가 발급한 프레스카드를 이용해 공짜로 영화를 보는 제게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대다수 일반 유료 관객들의 입장에서 지적하는 것입니다. 공짜로 보는 저도 그럴진데 일반 유료 관객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테지요.)
수입을 올리기 위해 굳이 광고를 틀어야 한다면 앞 뒤 상영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들어와 앉은, 광고와 예고편까지 다 보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한 관객들에게만 틀어주고 상영시간이 되면 영화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노출관객 수의 불확실성 때문에 광고단가가 떨어지겠죠.)
각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과 원가상승 속에 수익 극대화를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매표소에 경험 많은 직원 대신 아르바이트로 채우고,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를 위한다며 만들었던 VIP 데스크나 교환, 환불 데스크는 폐쇄하는 등……. 얼마 전 표를 끊으러 다른 멀티플렉스에 갔는데 평일 오전인데도 방학이라 관객들이 많았습니다. 줄서서 보니 제 앞에 대략 20여명이 줄을 서있는데 창구 직원은 두 명(중간에 한 명은 사무실로 들어가더군요) 번호표 뽑고 10여분 동안 기다리며 옆의 매점을 보았더니 그 곳에는 매표 창구의 두 배인 3-4명의 직원들이 관람료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려주는 팝콘과 콜라 판매에 열심이더군요.
멀티플렉스의 출현은 관객들이 보다 편하고 쉽게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쾌적한 관람 문화를 확산하는 등 영화 관람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바 있습니다. 다른 산업 부문과 마찬가지로 이 업종에도 어김없이 불어 닥치는 효율과 수익 극대화라는 신자유주의 바람이 당장 재무제표에는 흐뭇한 숫자로 올라가겠지만 이렇게 계속 극장의 가장 핵심이자 기본인 고객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 바람이 자칫 산업 자체를 날려버리는 악성 토네이도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은 안 해봤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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