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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사인은 "의료사고, 독살 아니다" 주장

억류와 다름 없는 외국에서의 인질 생활 7년을 보내고 조선으로 돌아온 지 불과 3개월만에 죽은 소현세자(昭顯世子.1612-1645)를 일컬어 흔히 비운의 세자라 한다.

그런 비운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근거 중 하나가 독살설이다. 부왕 인조, 혹은 정적들에게 독살되었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정치적인 관점을 배제한 채 오로지 한의학의 측면에서 분석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한의사 김종덕(44) 씨는 주장한다.

서울대 농대를 나온 뒤 뒤늦게 한의사 과정을 밟아 현재 서울 동작구에서 사당한의원을 운영하는 그에게 독살설은 성립이 불가능하다.

소현세자는 이미 청나라 심양에 갈 때 앓기 시작한 질병과 그에 따른 다른 질병을 안고 귀국했으며, 그럼에도 당시 의료진은 질병 원인을 잘못 진단하고 엉뚱한 처방을 해서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같은 문제의식에서 접근한 글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규장각의 반년간 학술기관지 '규장각' 31호에 이어 최근 같은 잡지에 그 후속 논문을 투고했으며, 3일 간송미술관 모임에서도 기존 주장을 보강하는 발표를 할 예정이다.

이처럼 같은 주제의 연구를 반복하는 데 대해 그는 "다른 연구자로부터 내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받을 수 있으며, 나아가 내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면 그것을 널리 알리는 계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 원장이 이 문제에 매달리게 된 것은 학술진흥재단 지원으로 규장각이 수행 중인 '규장각 소장 중요 자료 역주(1)' 일환으로 왕세자 관련 관청 일기류의 의학 부문 자문을 하게 되면서였다.

다행히 소현세자에 관한 상세한 기록으로는 심양일기(瀋陽日記)와 을유동궁일기(乙酉東宮日記)가 남아있으며, 이에는 세자의 병력(病歷)이 비교적 소상하게 적혀있다.

한 원장은 이를 검토한 결과 소현세자는 독살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의료사고'로 사망했다고 확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소현세자는 청나라로 끌려가면서 산증(疝症)이 발생해 침구치료와 약물치료로 일정 부분 회복되긴 했으나 완치된 상태는 아니었다. 그의 산증은 분노와 화기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한기에 접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1637년 1월30일 남한산성에서 조선이 청에 항복하자 소현세자는 2월8일 인질 신분으로 서울을 출발해 4월10일 심양에 도착했다.

어떻든 이런 상태에서 세자는 결흉증과 음허오열이란 증상으로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세자를 치료한 기록을 볼 때 당시 의료진은 '학질'로 잘못 판단하고 치료하는 바람에 사망에 이르렀다고 한 원장은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단계에서 한 원장은 사상체질의학에 근거해 소현은 소양인에 속한다고 추정한다.

"보통 소양인 소양병증인 두통이나 발열, 한열 왕래, 오한 등에 일반적인 감기치료를 써서 땀을 내게 하면 발광한 것처럼 횡설수설하는 증상이 나타나지만, 이를 열병과 같은 것으로 보아 학질 치료를 계속하면 음기가 더욱 허해져서 결국 사망하고 만다"고 지적했다.

한 원장은 "심양일기나 을유동궁일기에 나타난 증상과 치료과정에서 볼 때 건강한 세자가 갑자기 독살되었다는 주장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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