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 여홍철은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 드디어 발을 내디뎠다.
'아차'하는 순간, 발은 이미 떨어졌고 순식간에 가속도가 붙었다. 여홍철은 숨을 그득히 참고, 본능에 이끌리듯 도약했다. 허공에서 현란한 뒤틀기로 완벽한 기술을 구사했으나 바닥에 떨어지면서 큰 보폭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그는 "그 때 한 번 더 생각을 하고 뛰었으면 착지를 그렇게 하진 않았을 텐데..."라고 회상한다. 떨치지 못한 아쉬움.
눈을 질끈 감고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기석에 들어온 여홍철은 결국 러시아의 네모프(합계점수 9.787)에 0.031차(여홍철 합계점수 9.756)로 뒤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홍철은 은메달의 쾌거를 이루고도 카메라 앞에서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외신 기자들은 그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 선수들은 1등을 못하면 아예 메달이 아니라는 둥 슬퍼하는 표정을 짓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홍철은 이에 "3등이 목표였는데 2등을 했다면 좋다. 하지만 나는 1등을 목표로 갔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올림픽 금메달은 신이 내려준 선물인가보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여홍철은 소년 시절 "무협 영화의 주인공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꿈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는 처음 체조부의 문을 두드렸다.
어려운 고비는 어린 시절부터 찾아와 그를 시험했다. 여홍철은 중학교 1학년 때, 무리한 연습으로 뼈 사이의 소위 '물렁뼈'가 녹아내리는 골수염을 앓았다. "운동을 하게 되면 팔을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그는 쓴 눈물을 흘리며 2년 6개월 동안 '공백기'를 갖는다.
하지만 소년이 품은 열정은 하늘을 감동시켰다. 다행히 녹아내리던 뼈가 단단히 굳기 시작한 것. 여홍철은 관절에 무리가 덜 가는 뜀틀을 택했다.
여홍철은 지금까지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으라면 두 가지를 꼽는데, 그 중 하나가 "중학교 시절 소년 체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라고 한다. 어렵게 체조를 다시 시작해 땀으로 거둔 첫 메달이 소년 여홍철에게는 세상과도 바꾸지 못할 만큼 값졌으리라.
여홍철이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 또다른 사건은 1991년 유니버시아드 대회다. 이 대회에서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비로소 "이런 맛으로 운동을 하는 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여홍철은 체조의 '맛'을 '멋'으로 승화시켰다. 그가 최초로 개발한 기술 여 1, 여 2는 어린 시절부터 머리 속에 그려왔던 상상 속 기술을 현실로 이뤄낸 것이다. 세계 체조계는 이로써 여홍철의 독보적인 기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제체조연맹에서 그의 성을 붙여 명명한 '여(YEO)' 기술은 착지불안을 감수하면서도 체조 특유의 화려한 기술을 더 돋보이게 한다.
여홍철이 초등학교 때 처음 상상하고 그려왔던 '여 1(YEO 1·쿠에르보 한 바퀴 반)'기술은 손을 짚고 몸을 틀어 뒤로 세 바퀴를 도는 고난도의 기술이다.
'여 2(YEO 2·쿠에르보 더블 턴)'는 공중에서 몸을 펴 두 바퀴 반을 비트는 기술로 이 역시 착지불안이 따르는 고난도 기술이다. 그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중국의 리샤오핑을 이기기 위해 전지 훈련 당시 이 기술을 개발했다.
여홍철은 '올림픽'을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계기였다"고 말한다. 체조 선수로서 그의 최종 목표는 "중·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그는 올림픽 메달을 따면서, 본인의 언어로, "(본래의 목표보다)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대학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현재 그는 경희대학교 스포츠지도학과 교수로 스포츠 유망주들을 기르고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은 그에게 '가장 좋았던 순간'과 '가장 후회되는 순간'을 동시에 안겨줬다. 이에 대해 여홍철은 겸허하게 말한다. "당시 금메달을 땄으면 이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아쉽게 금메달을 놓쳐 더 유명해졌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여홍철
1991 유니버시아드 대회 금메달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1994 호주 브리스번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체조 뜀틀 금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8 現 경희대학교 스포츠지도학과 교수
※ '올림픽의 영웅들' 전체 영상은 SBS미디어넷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영상제작=SBS미디어넷, 글·편집=SBSi 박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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