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중앙의 약간 넓은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뻗어 있었고 길 양쪽에 자그마한 가게들이 끝없이 늘어져 있는 것이 마치 우리의 남대문 시장을 연상케 했습니다.
파는 물건은 주로 관광객들을 겨냥한 기념품으로 구리 세공품과 시샤라고 불리는 물담배 도구, 아랍 전통의상, 피라미드나 투탕카멘, 스핑크스 모형 등이 주종을 이뤘습니다.
비슷한 가게들의 행렬에 지루해져 뙤약볕을 잠시 피하려고 그늘을 찾으니 추억의 '냉차장수'가 향수를 자극했습니다. 냉커피 색깔의 정체모를 차에 얼음을 둥둥 띄워놓은 모양새가 일단 구미를 강하게 당겼습니다.
목도 말랐던 차라 한 잔 마셔볼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으나 문제는 재료에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 점이었습니다. 생수만 마셔도 이따금 뱃속이 불편해지던 터에 제작과정과 원재료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액체를 마시는 일은 만용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해 결국 입맛만 다시고 말았습니다.
대신 생수 한통으로 목을 축이는 사이 이번엔 아랍인들의 주식인 아에시를 잔뜩 머리에 인 남루한 차림의 소년이 눈에 띄었습니다. 힘이 부치는 지 빵을 얹은 나무판은 소년의 머리 위에서 한쪽으로 기우뚱 쏠려 있었고 소년은 지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몇 개 사볼까 엉거주춤 관심을 표했지만 소년은 배달 가는 길인지 눈길 한 번 제게 주지 않고 부리나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짠한 마음을 추스르고 발걸음을 다시 옮기니 젊은 상인들의 호객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씬느?"
"야밴?"
이곳에서도 동양인을 보면 일단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이 떠오르는 모양입니다. 몇몇 적극적인 친구들은 땀에 전 우악스런 손으로 제 팔목을 움켜잡으면서까지 적극적인 호객을 펼칩니다.
마음먹고 나온 길에 빈손으로 가기도 뭐해 기념품을 사기로 했습니다. 외국인들을 '알라가 주신 봉'으로 여기는 이곳 상인들을 상대로 바가지를 쓰지 않으려면 일단은 부르는 값의 5분의 1, 심하게는 10분의 1로 후려쳐 흥정을 시작하라는 교민들의 충고가 있었지만 워낙에 물건 값이 싸 그저 절반 정도의 가격에 (그래도 50%! 할인) 앙증맞은 세공품 몇 개를 골랐습니다.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땀까지 줄줄 흘려야만 했던, 썩 유쾌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카이로의 재래시장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고 활력이 넘치는 특별한 곳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