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오후, "금강산 관광을 떠난 50대 여성이 북한 병사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 국민의 귀와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북한 땅으로의 관광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하루 평균 1500명이 넘는 관광객을 북측으로 보내는, 이렇게 생활 속에 익숙해져있는 상황에서 북한 병사에 의해 관광객이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경천동지할 사건이 일어났다는 게 기자인 저도 처음엔 도무지 믿기질 않았습니다.
사고 당일, 보도국은 갑자기 분주해졌습니다. 전혀 취재가 되지 않는 북한에서 일어난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당일 뉴스를 막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취재 루트가 없는 상황에서 대북 관광을 전담하고 있는 현대아산은 기자들의 유일한 창구였습니다. 사건 경위가 어떻게 됐는지, 어떻게 경계선을 넘어갈 수 있었는지,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었기에 기자들은 현대아산의 홍보담당자들에게 또 묻고 또 확인하고 또 다시 물었습니다.
그날 기자들의 질문은 몇 가지에 집중됐습니다. 우선 어떻게 숨진 박왕자 씨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위험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었는지. 이에 대해 현대아산측은 "북측 군사지역과 관광구역을 구분해놓는 2미터짜리 초록색 철조망이 모래사장 전부와 바다입구까지 촘촘히 이어져 있다"면서 "철조망을 뛰어넘던지 아님 바닷물에 몸을 적셔서 돌아서 건너가던지 해야하는데 어떻게 넘어갔는지 모르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신들은 위험지역을 뚜렷이 표시했기 때문에 관광객의 돌발행동이 불러온 사고일수 있다는 쪽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또 과연 박왕자 씨가 위험지역을 모르고 갔을까에 대한 문젭니다. 금강산관광은 '하지마' 관광이라고 불릴 정도로 북측과의 관계를 고려해 못하게 하는 것, 제약이 많습니다. 현대아산측도 경계선을 절대!! 넘으면 안된다는 교육을 반복적으로 강하게 그렇게 시킨다고 강조했습니다. 절대 모르고 어슴프레한 새벽녘에 그곳을 찾진 않았을거라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사건에 대한 의문점은 점점 증폭돼갔습니다. 사건 발생 하루가 지나고 이곳저곳에서 증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그곳 해수욕장에 다녀온 사람들은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안전장치가 미흡하다 말했고, 박 씨와 동행했던 관광객들은 해당지역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밝혔습니다.
현대아산은 결국 사건발생 이틀이 지나서 해수욕장 경계선 부근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현대아산측이 바다입구까지 이어져 있어 돌아가려면 몸을 물에 적셔야한다는 철조망 대신 30미터 넘는 구간이 낮은 모래언덕으로 구분지어져 있었습니다.
충분히 사람이 걸어서 넘어갈 수 있는 높이라서 박 씨가 어떻게 위험지역에 진입하게 됐는지 설명이 되는 부분입니다.
현대아산은 말을 바꿨습니다. "원래 설계도면엔 철조망 길이가 그렇게 돼있었다. 근데 바뀐지 몰랐다. 물살이 자꾸 밀려와 철조망이 쓰러지는 바람에 그쪽은 모래언덕으로 대신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금강산 해수욕장에 무려 6년 동안 관광객을 보낸 회사의 변명치곤 궁색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 중차대한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 현장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고 6년전 설계도면을 보고 자신들의 안전조치를 확신하는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결국 관광객을 되도록 많이 보내려고 노력했을 뿐 안전조치나 해당지역 관리는 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한 셈입니다.
해프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건 당일, 기자들은 박 씨가 경계선을 지나게 된 정황을 알수 있는 CCTV 같은 것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현대아산은 비치호텔에서 4시 반에 나가는 장면은 CCTV에 찍혔지만 모래사장 한가운덴 그런 기록장치가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현대아산측이 공개한 사진 한쪽 구석에 아주 조그맣게 CCTV 모습을 띤 물체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이 확인을 요청하자 결국, 북측 영내에 남측 방향으로 CCTV가 설치돼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습니다.
중대한 물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기자들은 CCTV 가동여부를 물었고, 현대아산측은 "북측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시간 후, 현대아산측은 "알아보니 2005년에 북측의 요구에 따라 우리가 북한에 제공한 것"이라 말을 바꿨습니다. 자신들이 3년전 설치해준 CCTV에 대해 파악도, 관리도 하지 못해 망신을 자초한 셈입니다.
관광객들에게 위험지역에 대해 반복적으로 고지한다는 입장도 그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관광객들의 증언이 이어지자 "안내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한발 뺐습니다. 금강산 관광 안내원에 대한 13장짜리 교육 매뉴얼에도 해당 사항은 단 두줄 '해수욕장 경계 펜스 바깥은 북측 군사 제한 지역이므로 펜스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안내하시기 바랍니다' 뿐으로, 내용도 경각심을 주기엔 약하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현대아산은 굵직한 주요 팩트들에 있어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관광 주관사로서의 최소한의 안전장치 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그에 대해 먼저 사과하고 인정하기 보다 처음엔 덮으려고 급급했다가 외부에서 사실이 알려지자 수습하려는 인상을 줬습니다.
물론 현대아산측은 폐쇄적인 북측과 얘기한다는 자체에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보를 거의 차단하는 북측과 사업을 해야 하는 애로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아산은 북과 관련된 정보가 아니라 자신들과 관련된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사실로 알렸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이런 미흡한 조치들은 10년간 이어온 금강산 관광 주관사로서의 이미지와 신뢰에 상당한 흠집을 남겼습니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언이자 진실이 큰 사건을 대응하고 해결해나가는 기업이나 정부의 행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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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식경제부와 산업계를 취재하는 정호선 기자는 1997년에 경제지 기자로 시작해 2005년에 SBS에 입사했습니다. 좌우명인 '긍정의 힘'과 함께 오랜 경제분야 취재경험으로 차분하고 정돈된 기사로 활약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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