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역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하시나요?
그게 하루 이틀만에 연구가 되는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20대 초반에 연극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저를 괴롭히고 저를 힘들게 만들고 좌절에 빠뜨렸던 굉장히 어려운 작품들과 어려운 캐릭터들을 헤쳐나가면서 하나 둘씩 저만의 노하우가 생겨난 것 같고 또 생활인으로서 제가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애도 있고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을 바라보며 생기는 경험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저만의 캐릭터 연구나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 정점이나 절정에 오른 단계에서 재능이 고갈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등 그런 걱정이나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연기라는 것이 결국은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표현하는 부분하고 매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을 해본 적이 있죠. 재능의 고갈이라기 보다는 내가 혹시 살아오면서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시야가 나도 모르게 편협해져 있는 거 아닌가, 나도 모르게 길들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자기도 모르게 다른 모습이나 다른 색깔을 가지고 굉장히 한정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라는 것을 나도 모르게 느끼고 있는게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하죠.
그런 걱정을 해서 항상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이를테면 저랑 세대가 차이가 나는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보면 저는 굉장히 와닿지가 않거든요. 근데 그걸 와닿지가 않는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왜 저렇게 좋아할 수 밖에 없는가라는 것에 대해 그네들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유연성을 키워야할 것 같아요. 아마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유연성이 굉장히 좁아지고 그럴 것 같아서 그런 경각심을 갖고있습니다.
- 작품이 끝나고 쉴 때는 어떻게 쉬세요?
사실 영화같은 경우 촬영이 3, 4개월 정도 걸리는데 끝나면 거의 파김치가 되거든요. 정신적으로 육체적 거의 고갈이 되기 때문에 뭘 하고 싶다기보다는 빈둥빈둥하면서 몸을 정상적인 상태로 만들고 싶다고 느끼는데 제일 많이 하는 일은 가족 들하고 여행가는걸 좋아해요. 가족들하고 여행가서 애들하고 오랜만에 놀아주고, 색다른 장소에 가서 나를 좀 시야를 트게 해주고, 또 낚시하는거 좋아하니까 낚시도 가고... 그 정도죠.
- 대학 때 연극동아리에 들어가서 연기를 처음 접하셨죠?
제가 386세대거든요. 대학 때 굉장히 데모가 많아서 날마다 휴강이죠. 지금에 비해선 적겠지만 집에서 목돈을 가져와서 등록금을 냈는데 갔다하면 휴강이고, 오전 수업하면 휴강이고 학교를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많이 들었죠. 모이는 건 다 술집이고 막걸리집...막걸리집에서 모이는건데 그때 저희들은 모두 외로웠을 겁니다. 학교를 그만둘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연극을 연습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구경하게 됐어요. 한 십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뭘 하는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표현하고 있더라구요. 거기서 저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싶고 외로움을 저사람들하고 나눠서 동지애도 갖고 싶고 나도 뭔가에 몰두해 뭔가를 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게 대학교 때 극예술연구회라는 연극 동아리였죠.
- 그때 어떤 매력을 느끼셨나요?
저는 중고등학교때도 영화를 좋아했지만 연극은 자주 접할 기회가 없었어요. 일단 연극 동아리에 들어간 이후로는 사람이 다른 인간을 표현하는 매력이 밥 먹는 것 만큼 매력적이고 그걸 함께하는 사람들, 함께 고민하고 몰입하는 사람이 나혼자만 있는게 아니라 동료들이 다 같이 도와주고 하는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을때 그땐 어땠어요?
그때가 80년 말 90년 초였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대학로라는 곳은 전국 연극인들에 메카였어요. 20대 중반 초반 30대 초반까지 젊은이들이 차비가 없을지언정 끝까지 모여서 연습하고 그런 사람들이...과장되게 표현해서 수천 명이 그냥 대학로 거리를 계속 배회하고 다니면서 공연을 보고 토론을 하고 소주 한 병에 쥐포를 놔두고 밤을 새면서 토론을 하고, 그때가 정말 가장 행복했던 시기 중에 하나였지 않나 싶습니다. 그때 동료들은 지금 제가 이름만 거론해도 다 아는 빅스타가 된 사람들도 다 그 당시에 대학로에서 어렵게 뒹굴고 했던 친구들이거든요.
- 본인이 연기를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언제 하셨나요?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연극을 하겠다 마음먹은 순간 밥벌이로 하겠다는 것 보다는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이길을 가련다라는 불효 막심한 결심을 내리고 부모님께 이제 용서를 빌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이 길은 제가 선배들을 보나 그 위 선배님들을 보나 너무나 어렵게 사시는 걸 제가 알기 때문에 그런걸 다 각오하고 사는 거지 이게 밥벌이가 되겠다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근데 어떻게 하다보고 연극 배우가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건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니까 그 시기를 지나고 제가 지금 이 나이가 되니까 제가 이런 모습으로 이자리에서 이렇게 인터뷰할지는 상상하지도 못했죠.
- 연극 출신 연기자들이 연극은 마음의 고향이자 뿌리이다 이렇게 말씀을 많이 하시던데 김윤석씨도 그러신가요?
저도 그럴 수 밖에 없죠. 왜냐면 제일 먼저 만난게 연극이었고 제일 돈이 적게 들어가는 것도 연극이었기 때문에, 정말 사람들만 모여있고 돈 없이도 모여서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곳이 연극이었고, 거기가 출발점이었고 거기서 작품 해석을 하느라고 희곡을 보고 국어사전까지 들춰가며 장음 단음 따지고하며 그렇게 공부했던 시절이 틀림없이 제 밑바닥에 있는 제 베이스고 지금까지 힘을 주는 원천이기 때문에 연극은 고향 같고 연극에서 다시 뿌리를 찾고 싶고 그렇죠.
-요즘 유명해져서 불편한 점은 없나요?
백화점이나 마트를 같이 못 가죠. 같이 간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일들이 생기니까.. 그런데 그런 부분 외에는 좋은 점도 많죠. 식당에 가면 반찬도 많이 주시고...(웃음) 근데 어쩔 수 없이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저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으니까 조심하게 되죠.
근데 제가 행동 반경이 넓지 않아서, 밖에 자주 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렇게 크게 불편한 점은 못 느끼고 있어요.
-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는 스타가 되는 것은 연기를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인 것 같거든요. 인기 스타 자체가 인생의 목표인 젊은 세대들도 많은데...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죠.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으로써는 너무나 행복에 겨운건데 좋아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히 내가 생각하는 거하고 훨씬 다른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 것 일수도 있고 그 좋아하는 만큼 그 사람에 대해 기대감이 분명히 있을거고,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제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계속 발전해 나가야 되고, 더 좋은 모습으로 다가가야 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면 결코 외향적이고 순간적인 반짝거림으로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쪽 길을 원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베이스가 두터워야 되고 넓어야 되고 계속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배우 김윤석은 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은가요?
좋은 배우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야 모든 배우가 한결같고 연기를 잘한다. 잘생긴 배우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배우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지금 꽃미남 배우들도 아마 그 얘기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란 소리를 제일 듣고 싶을 거고, 제 방식의 표현으로 얘기 한다면 저라는 배우를 통해서 한 장면이라도 그 장면에서 그 사람의 모습이 잊을 수가 없다, 그 모습이 어떤 한 인간이나 캐릭터의 특징을 단 몇 초 만에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그런 장면을 많이 좀 남기고 싶어요.
(* 인터뷰가 끝나고 스케치를 위해 촬영 현장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모두들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한 장면 촬영이 끝난 뒤 모니터 앞으로 뛰어와 자신의 연기를 지켜보는 흐뭇한 표정에서 더위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몰입과 그 몰입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 많이 보여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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