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인지, 카이로에 도착한 뒤 한국에 계신 지인들과 전화나 이메일로 안부를 물을 때면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이 날씨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엄청나게 덥습니다.
카이로의 기후는 5월부터 본격적으로 뜨거워지기 시작해 10월까지는 해가 있는 동안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리고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30도 대를 유지할 만큼 무덥습니다.
폭염이 최고조에 이른 요즘은 밤에도 에어컨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사막기후 특성상 습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응달과 양달의 차이가 말 그대로 천지차이입니다.
햇볕 아래에서는 30초만 걸어도 온몸에 땀이 맺힐 정도로 덥지만 그늘에만 가면 그런대로 견딜만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체감온도는 내려갑니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 어디가나 일본인과 함께 양대 골프광으로 정평이 난 한국인들은 이곳에서도 한낮에 (물론 직사광선을 막아주는 카트를 몰며) 골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지난 2001년부터 이런저런 전쟁취재를 위해 이라크나 카타르, 두바이, 바레인 등 중동 국가들을 다녀본 끝에 느끼는 바는 더위는 결코 적응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더위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카타르의 50도 사막더위와 40도 후반대의 습한 두바이 더위에서 일주일 이상 시달리다 서울이나 요르단 같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곳에 갈 때면, 훨씬 견디기 쉽겠구나 생각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그 나름대로 여전히 사람의 진을 빼는 게 더위입니다.
공식 기온은 국가기밀?
기온과 관련해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해드리자면, 이집트 기상당국이 이제까지 단 한번도 카이로의 공식 기온을 40도 대로 발표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더워도 39도가 발표치로는 최고라는 얘기입니다. 40도대 기온은 아무래도 견디기 힘든 더위라는 인식을 주기 때문에 무더위를 염려해 세계적인 관광지인 카이로를 찾는 발걸음이 줄어들까 우려해서라고 합니다. 미국의 원조와 더불어 관광 수입이 나라 살림의 근간을 차지하는 나라다운 발상인 듯 합니다.
더위 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한가지 더 있습니다. 좀 지저분한 얘기입니다. 지난 2003년 요르단 연수중 바레인에 들렀을 때 일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아랍권은 화장실 변기 옆에 거의 대부분 호스로 연결된 비데용 수도꼭지가 있습니다. 저 역시 볼일을 본 뒤 비데를 하려고 무심코 수도꼭지를 ‘필요한 곳’에 겨냥하고 손잡이를 당겼을 때.... 비명을 지르며 변기를 박차고 일어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혹시 온수를 틀었나 살펴봤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냉수만 틀어져 있었지만 50도 가까운 기온에 수도관이 달궈져 수도꼭지를 통해 흘러나오는 물 자체가 열수였던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화상은 면했지만 그날 경험 이후로 중동에서 수돗물을 틀 때면 항상 손 끝으로 물의 온도를 점검하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