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권력과 시민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유용한 통로입니다. 권력과 시민이 대립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권력은 언론을 통해 시민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시민은 언론을 통해 권력의 ‘다음 수’를 읽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이명박 정부와 시민 사이의 의사소통에 심한 장애가 일어났습니다. 언론이 통로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례를 SBS 뉴스를 통해 살펴봅니다.
지난 19일 SBS 뉴스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는 지 잘 챙겨보지 못한 것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는 말로 국민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5일 뒤인 24일 그는 국가정체성에 도전하거나 불법폭력적인 시위에는 엄격히 대처하라고 내각에 지시했습니다. 그는 촛불민심은 겸허히 수용하되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고 뉴스는 보도했습니다. 동일한 촛불시위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가 5일 사이에 “뼈저린 반성”에서 “엄격한 대처”로 180도 달라졌음을 말해주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럴 때 대통령이 태도를 바꾼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이제부터 대통령은 무엇을 하려 하는가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입니다. 이를 두고 한 인터넷 신문은 “닷새 만에 다시 도진 ‘MB 본색’”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방송 뉴스가 이와 같은 관점을 가지라는 말은 아닙니다. 관점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석보도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날 SBS 뉴스는 이 대통령의 말이 “촛불민심은 수용하되 불법과 폭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것은 분석이 아니라 그의 말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뉴스는 우선 대통령이 말한 ‘촛불민심’은 무엇이며, ‘국가정체성’은 또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말이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가 파악하는 촛불민심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재협상과 다름없는 추가협상”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추가협상으로 촛불민심을 수용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왜 불쑥 ‘국가정체성’이라는 말을 들고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뉴스의 보충취재가 필요했습니다. 촛불집회의 어떤 점이 국가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는지를 그에게 물었어야 합니다. 시위에서 나오는 “대통령 퇴진” 구호를 국가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또 더 깊은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대통령을 곧 국가와 동일시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선거를 통한 민의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을 일부 시민들이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인가 하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은 정체성을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시민들은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촛불집회에 참여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을 곧 국가라고 본다면,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고, 민의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에 대한 퇴진요구를 문제 삼을 수는 있지만, 이를 국가정체성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일 것입니다.
이 대통령은 24일 발언을 통해 폭력과 국가정체성에 대한 도전을 강조하면서 이후의 촛불시위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수입위생조건 고시의 관보게재를 강행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이명박 정부의 ‘강수’가 촛불정국에 어떤 파장을 가져 올 것인가가 당연히 뉴스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24일 SBS 뉴스는 “고시 강행은 야당과 국민에 대한 제2의 선전포고다. 고시를 강행하면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는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을 전하면서 쇠고기 정국은 다시 정면대치로 치닫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이른바 쇠고기 정국에서 야당의 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민심과 관련하여 뉴스는 자체적인 판단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21일 SBS 뉴스는 추가협상 합의내용을 전하면서 이에 대한 평가는 어디까지나 민심의 잣대가 협상 결과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전망 아닌 전망을 했습니다. 뒤이어 뉴스는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협상 결과를 '기만적'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시민단체들이 민심을 대변한 것이라고 보았습니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뉴스가 추적했어야 합니다. 민심의 향배에 달려 있다는 말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민심의 향배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민심의 향배에 대해 한 신문은 흥미 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한-미 쇠고기 추가 협상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도였습니다.
촛불정국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방향이 잡혔고, 이에 대한 민심의 향배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현재의 진행상황은 이 대통령과 촛불집회가 격렬하게 대립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음을 보여줍니다. 이 대통령과 시민들 사이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한 언론의 역할이 더욱 절실해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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