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요즘 큰 고깃집 가보면 메뉴마다, 혹은 가게에 커다랗게 소의 출처?를 알리고 있을 겁니다.
"우리집은 국내산 쇠고기만 사용합니다"라든가, "한우 아니면 100배 돌려드립니다" 등등.
그런데 이제는 큰 고깃집 말고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어제부터 큰 고깃집에서 적당히 큰 규모의 식당까지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적용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그리고 약 2주 뒤에는 모든 식당이 표시제 적용을 받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뭘까요.
1. 법을 만들 때도 시간이 걸리지만, 시행하는 데도 역시 적응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법이 제정되거나 옛 법을 개정했을 때는, 공포 뒤로부터 6개월로 시행시기에 여유를 둔다든가, 즉시 시행하고도 몇 달 간은 계도와 단속을(사실은 주로 계도) 병행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용합니다.
단계별로 강화, 확대하는 사안은 특히 그렇습니다.
어제까지는 합법인데, 오늘부터 불법이 되는 그런 상황이라면, 미리 업소에서는 준비도 해야 하고, 당국에서도 단속하려면 인력이나 장비나 운용계획 등등 역시 준비가 필요합니다.
2. 자,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만 보면, 식품위생법이 개정되면서 2007년 1월부터 300제곱미터 이상 대형 음식점에서 '구이용'에 한정해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법을 개정할 때부터 원산지 표시를 확대해나간다는 방침이 있었기에, 추가 개정 작업이 뒤따랐습니다.
개정 결과, 올해 6월 22일부터 100제곱미터 이상 중형 음식점에서도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하도록 했고, 표시대상 음식을 구이용에서 구이, 찜, 튀김, 탕, 생식(육회)까지 확대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어제부터 100제곱미터(옛 말로는 30평 정도) 이상 식당에서도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해야했습니다.
2007년 1월 첫 시행 뒤 1년 반쯤 지나고 나서 확대 시행한 거죠.
대상 업소는 2800곳에서 11만 개로 대폭 늘었지만, 그리고 대상음식도 확 증가했지만, 이 정도 기간이면 업소나 단속공무원들이나 준비할 만하다고 했겠죠?
문제는 다음 확대 시기입니다.
3. 아직까지는 예상입니다만, 7월초(7월 4일쯤으로 예상하더군요...)에는 100제곱미터 이상이라는 기준도 없어지고, 모든 식당에서(집단급식시설까지 포함한), 쇠고기를 사용한 모든 메뉴에 (구이, 탕, 찜, 튀김, 생식에다가 쇠고기와 쇠고기 가공품을 이용해 조리한 음식 전부 다!)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해야 합니다.
대상업소가 이제 11만 개에서 57만 개+@ (급식시설 같은 게 10만 개 안팎이란 말은 들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로 늘어납니다. 2주 만에 4~50만 개가 더 늘어나는 겁니다.
4. 1년 반 동안 준비했던 걸, 2주 만에 준비해라? 이상합니다.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된 이유는, 원산지 표시를 규정한 법이 2가지인데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대책'으로 원산지표시제를 내놨기 때문입니다.
어제부터 확대시행된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는 식품 위생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근거합니다.
다음달 초 공포, 시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는 농산물품질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근거합니다.
300제곱미터 이상에 적용됐던 표시제나 어제부터 확대적용된 표시제는 식품 위생법에 따라 진행되고 있던 것으로, 사실 이번 쇠고기 파동과는 관계없지만 시기상 맞물리게 됐던 것이고요.
농산물품질관리법 개정은 이번 파동의 대책으로 제시된 것인데,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불안해하니, 빨리 시행하자 해서 원래는 6월 중순에서 말부터 하기로 했는데, 새 수입위생조건 고시가 늦어지면서 지연되고 있는 것이지요. (5월말에 발표했던 대책입니다.)
예정됐던 대책과 급조한 대책의 시간 차가 2주 정도였던 거죠.
5. 여기에 처음 발표 때는 예외로 해놨던 국과 반찬에 들어가는 쇠고기도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어제부터 100제곱미터 이상 식당에서는 쌀도 원산지 표시를 하도록 했고요,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미국산인지...)
올해 말(12월 22일)부터는 돼지고기, 닭고기, 김치도 원산지 표시를 해야합니다.
6.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야 참 좋습니다.
다만 정보의 범람 속에 이제는 어떤 정보가 참 정보인지 가려내는 게 더 큰 일이 되어버린 것처럼, 원산지 표시의 범람 속에 소비자들은 뭘 먹어야할지 더 혼란스러워지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거 단속은 누구보고 하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것도 역시, 민간 자율에 맡기는... '쇠고기 원산지 표시의 민영화', 혹은 '단속의 민영화'는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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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03년에 SBS에 입사한 심영구 기자는 사회1부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참 넓고 깊고 복잡하고 중요한 분야'라면서 건강하게 오래사는데 도움이 되는 기사를 써보겠다고 합니다. 사내커플로 결혼한 심 기자는 부부가 방송 기자로 활약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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