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불법승계와 조세포탈 의혹으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등에 대한 재판이 지난 12일 시작돼 일주일에 2차례씩 집중심리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재판에 임하는 조준웅 특별검사팀의 준비 부족과 무성의한 태도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삼성 역시 수년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의혹으로 수사 및 재판을 받아오면서 이 전 회장에게 관련 내용이 보고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견지하다 특검 수사를 거치면서 내부 논의에 따라 조직적으로 진술을 바꾸는 등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특검, 준비도 의지도 부족" = `삼성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민병훈 부장판사)는 1심 재판을 3개월 안에 끝내도록 하고 있는 특검법 규정에 맞춰 7월 16일 이전에 선고를 할 수 있도록 집중심리 방식을 택했고 애초부터 특검과 변호인 측에 협조를 당부했다.
그러나 특검 측은 증인신문 과정에서 특검보가 이미 물은 내용을 조 특검이 재차 장시간 묻는 일을 반복해 재판부로부터 수차례 경고를 받았고 급기야 재판부가 조 특검의 추가 신문 도중 휴정을 선언하는 일마저 일어났다.
이 전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와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차명 주식거래 과정에서 내부정보를 이용했는지를 증거조사하겠다며 양측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특검 측은 "그 부분을 추가 기소할 생각도, 양형자료로 삼을 생각도 없다"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재판부는 내부정보 이용 행위가 있었다면 `사기나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포탈한 혐의가 명확해진다고 보고 있지만 특검은 양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임에도 오히려 발을 빼는 모습을 보여 유죄 입증에 대한 의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특검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지난 1998년 계열분리 당시 중앙일보 지분을 매입하는데 쓴 돈의 출처 문제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해 오히려 궁금증을 증폭시켰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특검은 수사 발표 때 홍 회장이 1998년 계열분리 당시 중앙일보 지분을 매입하는데 쓴 돈이 일가의 자금이라고 해명했고 이 전 회장으로부터 돈이 나왔다고 볼 만큼의 증거가 없다며 내사종결 처리했다.
그런데도 이번 재판에서는 중앙일보 자금담당자 임모씨를 증인으로 불러 "(예전에 수사받을 때는) 비서실에서 증여받은 돈이라고 진술하지 않았느냐"고 다시 물었고 임씨는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비서실에서 건너온 돈인데 상속받은 홍 회장의 돈"이라고 해명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가 되지 않고 새로운 의혹이 일었지만 특검은 추가로 적극적인 추궁을 하지 않았다.
한편 조 특검은 20일 공판이 끝난 뒤 "재판장이 양 당사자 주장을 듣고 절차만 진행해야 하는데 재판장이 판단한 내용에 재판을 맞춰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 삼성 `말바꾸기' 자인 = 삼성측은 에버랜드CB 헐값발행 의혹과 관련해 수년간 검찰 수사 및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이 전 회장에게 관련 내용이 보고되지 않았다는 입장으로 일관하다가 이번 특검 수사에서 말을 바꿔 사건의 실체를 가리려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피고인 신분인 유석렬 삼성카드 대표이사는 재판 중 "그동안의 수사에서 이 전 회장에게 보고했다는 진술이 없다가 3월 처음 그런 진술서를 낸 계기가 있었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이학수 전 부회장 및 김인주 전 사장과 내부 토의를 했다"고 자인한 것.
유 대표는 "12년간 삼성의 발목을 잡아온 이 사건을 털고 가자는 내부의견이 있었고 회장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수비적으로 진술해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에버랜드 사건의 핵심 쟁점인 `비서실 공모' 여부에 대해서는 "CB발행 계획을 비서실이 보고받았을 뿐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해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남겼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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