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우리만큼 사기사건이 많은 나라가 있을까요? 아무리 속고 속이는 세상이라고 세상의 각박함을 한탄하지만 인심 좋은 배달 민족의 나라가 어느새 사기꾼이 판치는 곳이 됐습니다. 특히 사기사건의 피해자가 힘없고 돈 없는 소외된 이웃들이라면 그 폐해는 더욱 심각합니다.
<서민 등치는 사기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난 4월 서울 상계3동에서 있었던 곗돈 사기사건이었습니다. 100 억 원대의 사기사건이라며 상계동이 들썩였지만 언론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습니다. 4월9일 치러진 총선에 국민들의 눈과 귀가 집중된 탓에 언론도 총선보도에 몰두했습니다. 지난 3월말 60개가 넘는 계를 운영하던 계주가 갑자기 잠적하면서 거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떼인 피해주민들이 발을 구르며 범인을 잡아달라고 호소했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제보를 받고 취재를 시작한 게 5월6일. 먼저 사기 피해자가 몰려있는 상계시장에서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시장상인들과 노점상등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들이었습니다.
피해액은 한사람당 1~2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대까지 다양했습니다. 피해자만 1백 명이 넘고 피해액은 모두 1백억 원대로 추정됩니다. 경찰에 접수된 피해액만 34억 원이 넘었습니다.
피해자들 상당수는 고소장조차 쓸 줄 모르는 노인들이 많아서 신고조차 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계주가 나타나면 돈을 받을 수 있다며 경찰신고를 꺼린 피해자도 있었습니다. 거기다 주변 이웃이나 가족들을 끌어들인 경우가 많아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한달에 50만 원씩 40개월을 부으면 원금 2천만 원에 이자 7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어렵사리 계에 들었던 이들에겐 은행문턱은 너무 높았습니다. 목돈이 필요해도 신용과 담보가 부족한 서민들에게 선뜻 대출해주는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빌딩청소를 해 버는 60만 원 가운데 매달 50만 원을 꼬박꼬박 곗돈으로 부었던 50대 아줌마부터 수술비 마련을 위해 자식들이 보내주는 돈을 곗돈으로 부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70대 독거노인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들의 딱한 사연을 들으면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특히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동네에서 버린 헌옷가지를 주워와 손질해 입고 쥐똥이 섞여 이웃이 내다버린 쌀까지 가져다 밥을 지으며 살았던 아주머니의 낙담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월세라도 면해보려고 전세금에 보태기위해 곗돈을 부으며 한달 10만 원으로 생활을 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4월에 곗돈을 타면 무릎 수술을 받을 생각으로 수술예약까지 했다가 계주가 달아나자 수술을 포기하고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할머니의 절망어린 표정도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소외된 이웃들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피눈물을 흘리게 한 사기용의자는 한동네 이웃이었습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20년 넘게 상계동에 살면서 평소에 인심 좋고 친절한 이웃으로 통했던 공동 계주 3명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짐으로써 같은 동네 이웃들과 그 가족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렸습니다.
고소장을 접수하고도 수사에 미온적인 경찰의 태도는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단순한 고소고발 사건으로만 처리하려는 경찰의 태도는 달아난 계주를 잡겠다는 의지도 희박해 보였습니다. 달아난 계주 가운데 한명도 피해자들이 직접 잡아서 경찰에 넘기고서야 수사가 시작될 정도입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달아난 계주를 잡겠다며 용의자 연고가 있는 서울과 인천등지에서 수배전단을 돌리며 길거리를 헤매겠습니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용의자를 잡는다 해도 돈을 어딘가에 숨겨놓았을 경우 떼인 돈을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비슷한 사건에서도 사기용의자들은 재산을 어딘가에 숨겨놓고 잡혀도 1년 정도 실형을 살고 나오면 그만이라는 배짱을 부릴 정도로 사회시스템이 허술한 것도 문제입니다. 이런 피해자들을 보호할 법적 장치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소외된 이웃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법적 제도적 보호 장치가 없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진정으로 서민들을 위한 은행조차 없다는 게 답답한 현실입니다.
더 이상 소외된 이웃들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도 국가도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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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동세호 차장은 시사고발프로그램 '뉴스추적'팀의 최고참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정치.경제.사회부 등을 거치며 취재경력 20년째를 자랑하는 동 기자는 '사실 속의 진실을 끝까지 추적한다'는 각오로 현장을 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