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선물시장에서 다음달에 넘겨 받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이 130달러를 넘어섰다. 당장 거래되는 원유도 아닌 선물가격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앞으로 그만큼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주로 들여오는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보통 며칠 시차를 두고 선물가격 등락분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런데 지금 거래되는 원유 가격이 과연 시장기능에 따라 적절하게 정해지고 있는 것일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우세했다. 지난 2006년 60달러, 비교적 많이 올랐다는 지난해에도 평균 70달러 수준을 보여 온 OPEC 평균 유가가 50%를 훌쩍 넘게 뛰어 120달러 수준에 와 있었고, 가격 못지 않게 올 들어서만 70% 넘게 오른 상승 속도가 비정상적이었기때문이다. 마침 미국이 신용위기로 금융시장에 경색이 오고 실물경제까지 타격을 받으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RB)가 지속적으로 연방기금금리를 낮추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투기적 요인 때문에 유가가 오르고 있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다시말해 시간이 좀 지나면 가격 거품이 빠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정부 역시 비슷한 판단을 하고 이에 따른 경제운용 정책을 폈다.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를 낮추는 정책을 펴 원.달러 환율을 오르도록 유도했다. 우리 수출업체, 특히 자동차나 IT 같은 대기업 주력상품이 똑같이 수출해도 환율 덕에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효과를 얻도록 하고 국제시장에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 보자는 의도였다. 환율 덕에 얻는 효과만큼 가격을 낮출 경우 더 많이 팔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원유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작은 뉴스에도 크게 급등하는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신용위기가 한 풀 꺾이면서 현재 2%인 미 연방기금 금리가 더 낮춰질 가능성이 적어지면서 달러가치 하락 때문에 미국 채권 같은 달러자산을 팔고 원유시장으로 몰리던 자금의 쏠림현상이 줄었는데도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다.
보통 투기적 요인이 크다면 원유 재고에 변동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조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50% 넘게 차지하는 선진국 수요는 물론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과 인도 등의 수요 증가세에도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공급이 크게 증가하지도 않고 있다.
OPEC의 하루 공급량은 3200만배럴 수준에서 별 변함이 없고, 세계 원유 생산의 여유분이 적정수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00만배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쉽게말하면 원유를 찾는 사람은 계속늘고 있는 추세인데 원유를 공급하는 양은 그리 늘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산유국의 정국이 불안하다는 뉴스처럼 조금이라도 원유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식이 생기면 선물시장에서 서로 원유를 사려고 하면서 가격이 크게 오르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이쯤되면 지금 원유가격이 거품이라기보다는 시장의 수요.공급 원칙에 따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혹시 투기적 요인이 있더라도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20% 남짓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분석도 있다. 혹시 떨어진다고 해도 20달러 내외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 지, 최근 유가전망을 잘 맞춰왔던 미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 예상대로 200달러까지 갈 지 아니면 130~150달러 수준에서 멈춰 줄 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다만 오는 2016년 12월에 넘겨받는 원유선물가격이 12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물가수준을 고려해도 고유가 추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예상을 하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거래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 고유가가 거품이 아니라면 우리 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선 갈수록 중산층을 압박하고 있는 물가상승 압력이 점점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5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4.9%로 거의 7년만에 최대 폭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지난 4월 4.1%에 이어 4%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은행이 2007년부터 내년까지 3년 평균으로 잡겠다고 하는 물가상승률이2.5%~3.5% 수준인데 이를 훌쩍 뛰어넘는 물가급등 추세가 예상된다는 뜻이다. 국제유가 상승은 수입물가를 올리고 도매가격을 올린 뒤 시차를 두고 소비자 가격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상황은 '나쁜 인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 악순환(wage-price spiral)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물가가 계속 오르면 노동자들은 물가부담 때문에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사용자들은 임금을 올려주고는 그 부담을 다시 가격에 포함시켜 물건 가격이 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경기가 침체하는 극단적인 국면까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재 휘발유와 경유 가격 인상으로 화물차 운전자, 어부, 중간재 판매업체 등이 가격인상을 요구하는 행동에 나서고 있는 등 약간의 조짐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기대인플레이션'도 곳곳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약간의 조짐도 보인다. 해당 물건 생산에 있어서는 실제로 가격을 그렇게 올릴 이유가 없는데도 여기저기서 물가가 오른다고 하고 다른 물건을 구입하는 비용이 더 들다보니 비용상승 압박이 없는 물건까지 가격을 올리는 현상이 시장에서 나타나고 다른 경쟁자들이 이를 따라하는 양상도 일시적으로는 등장할 수 있다. 올 초 밀가루와 옥수수 가격이 급등하자 갑자기 1천 원짜리 김밥이 무려 50%나 가격을 올려 1천 5백 원에 판매됐던 것을 기억해 보시라.
그렇다면 정부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
고유가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고 지금 가격이 거품이 아니라면 이 수준에 맞는 에너지 효율화 방안을 찾고 중장기적으로 원유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정책에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은 시간이 걸린다.
유류세를 낮추고 보조금을 주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지만 정부는 세수 부족을 걱정하며 지금의 고유가가 일시적이라는 쪽에 아직 무게를 두고 소나기를 피하려는 태도인 것처럼 보인다. 일본이 유류세를 정액제로 받아가고 국내 정유시장에 '경쟁'을 도입해 지금의 고유가에도 시민들에게 부담을 덜 주는 가격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은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혹시 정부가 태도를 바꾼다고 하더라도 유류세를 정액제로 하거나 정유시장을 경쟁체제로 돌리는 데는 역시 시간이 걸린다.
결국 지금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가장 중산층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은 고환율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다.
지난해도 한때 국제유가가 100달러 수준에 이르렀지만 우리가 받는 부담이 그리 크지 않았던 이유는 환율시장에서 원화 강세 영향으로 100달러라고 해도 실제로는 7~80달러 수준으로 느껴졌기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100달러가 120달러처럼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가운 비판이 계속되자 연일 외환 시장에 정부가 개입해 다소 낮추는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원.달러가 1천 원 수준은 돼야한다"는 신념을 버리고 시장에 맡길 필요가 있다. 현 정부들어 오른 환율이 무려 100원이나 되는데 최근의 물가상승률 가운데 1%는 환율 탓이라는 국책연구기관 KDI의 분석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민간경제연구기관들과 학자들 분석대로 지금의 환율 정책이 수출에 주는 도움은 그리 크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몇 몇 대기업의 수출 여건을 조금 낫게 해 주려고 대다수 국민들에게 물가부담을 더 크게 해서는 안 된다. 앞서 설명한 나쁜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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