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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리포트] 71주년 '보천보 전투'에 담긴 의미

<기자>

내일(4일)은 김일성 주석이 보천보 전투를 수행한 지 7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보천보 전투가 뭔가 하면 1937년에 양강도, 당시에는 함경남도 지역이었는데요.

이 양강도 지역의 보천보를 김일성의 항일부대가 한밤중에 공격한 사건을 말합니다.

북한은 이 전투가 항일무장투쟁역사에서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이라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조선 중앙 TV : 일제식민통치 암담하던 시기 보천보의 밤하늘에 민족 재생의 횃불을 지펴올리신 어버이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가슴 뜨겁게 되새겨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보천보 전투가 그렇게 대단한 전투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먼저 별 것 아니라는 시각에서 보면 당시 보천보 지역은 3백여 가구가 사는 산중마을로써 일본 경찰이 5명 정도밖에 상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런 마을에 김일성 부대원 1백여 명이 들이닥쳐서 일본 순사들 5명 제압하는 것은 거의 식은죽 먹기였을 것입니다.

일본 순사들이 주변에 있는 큰 마을인 혜산진에 지원요청을 하기는 했겠습니다만, 1930년대에 이 지역에 가로등이 있었겠습니까, 길이 포장이 돼 있었겠습니까.

일본군이 지원 병력이 출동을 하려고 하더라도 날이 밝지가 않으면 사실상 출동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결국 날이 밝기 전에는 사실상 김일성 부대의 세상일 수 밖에 없는데, 김일성 부대는 보천보를 공격하고 한 시간만에, 그러니까 일본군 지원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이 곳을 다 빠져나갔다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뭐 에이 아무것도 아니네'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보천보 전투가 있었던 1937년이란 시기는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독립군에 대한 탄압이 극심했던 시기였는데요.

바로 이러한 시기에 김일성의 항일부대가 국내로 진공작전을 펼쳤다는 것은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보천보 전투는 전투 자체는 별로 보잘 것이 없었다는 측면과 어려운 시기에 상징적인 무장투쟁을 벌였다는 측면이 동시에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천보 전투에 대해 다소 장황하게 설명을 한 것은 보천보 전투를 바라보는 시각이 북한을 이해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란 나라를 보면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로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나라라는 측면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국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양 측면의 한 쪽만을 보려는 경향이 강한데요.

우리가 북한의 양측면을 종합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한다면, 우리사회에서 적어도 북한을 바라보는데 있어서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좀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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