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타계한 프랑스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천재적인 디자인 실력으로 17살의 나이에 크리스찬 디오르에 입사해 4년 뒤 수석 디자이너가 됐다.
1950년대 디오르의 고전적인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받은 작품들을 선보였으나 젊고 새로운 의상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1960년 모터사이클 의상과 스웨터를 무대에 올렸다가 디오르를 떠나게 된다.
알제리 전쟁으로 군에 입대했으나 병으로 일찍 제대하고 파리로 다시 돌아온 이브 생 로랑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대중의 찬사를 받게 된다.
이브 생 로랑은 여성스러운 우아함의 대명사였으며 유행을 초월하는 그의 패션은 패션 산업의 얼굴을 바꾸었고,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아이템을 여성복으로 옮겨와 패션의 혁명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여성 정장 바지와 가죽자켓을 처음으로 선보였으며, 남성의 턱시도를 본 따 만든 여성 턱시도 '르 스모킹'과 아프리카의 수렵복을 일상복으로 재현한 사파리룩, 좁은 어깨에서 시작해 아래로 퍼지는 무릎 길이의 치맛단이 사다리꼴을 이루는 트라페즈 룩,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옮겨놓은 몬드리안 룩, 여성의 얼굴을 기하학적인 무늬로 사용한 팝 아트 드레스는 참신함 그 자체였다.
아프리카나 러시아의 전통 민속의상을 현대적으로 도입했으며, 자신감 있고 섹시하면서도 사무실에서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바뀌어 가는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배우 카트린드 드뇌브와 티파니의 디자이너 팔로마 피카소, 모나코의 그레이스 공주도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이브 생 로랑에게 최초라는 수식어는 또 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는 살아있는 패션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그의 개인전을 열어줬으며, 흑인 모델을 최초로 무대에 세우기도 했다.
'YSL'이라는 그의 이름을 딴 로고는 최신 유행의 상징이 되었고, 기성복과 향수 등을 선보인 리브 고슈 라인으로 더욱 이름을 알렸다.
동료 디자이너 크리스찬 라크루와가 "샤넬, 스키아파렐리, 발렌시아가, 디오르 모두 대단한 일을 했지만 그들은 한 특정된 스타일 안에서만 작업을 했다. 이브 생 로랑은 훨씬 더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으며, 샤넬의 형식과 디오르의 화려함이나 풍부함, 스키아파렐리의 재치를 이브 생 로랑이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한 것으로 외신들은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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