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도박꾼 3인조가 경찰을 사칭해 또다른 도박꾼을 경찰서까지 끌고 다니며 협박해 돈을 빼앗다가 붙잡혔다.
18일 서울 구로경찰서에 따르면 프로골퍼 출신 한모(37)씨는 속칭 '렌즈기법'(카드에 형광물질을 칠해 특수안경으로 식별하는 방법)을 이용해 사기도박으로 돈을 따 온 '타짜'다.
한 씨는 올해 초 평소 알고 지내던 박모(40)씨로부터 "사기도박으로 한 탕 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귀가 솔깃해졌다.
4월 초 박 씨, 박 씨가 섭외한 염모(35)씨와 함께 카드도박의 일종인 '바둑이' 판을 2차례 벌였지만 염 씨에게 연거푸 돈을 잃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염 씨는 박 씨와 한 패일 뿐 아니라 렌즈기법에도 능한 또다른 타짜였다.
박 씨가 섭외한 '바람잡이' 도박꾼 2명까지 가세해 판돈이 더욱 커진 세 번째 판에서는 한 씨가 염 씨로부터 200만 원이 넘는 돈을 땄다.
사건은 염 씨가 돈을 거의 다 잃을 무렵 터졌다.
염 씨, 박 씨와 한 패인 김모(40)씨가 형사를 사칭해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던 모텔방을 급습한 것.
김 씨는 "나는 ○○경찰서 김 형사다. 사기도박 현행범으로 모두 체포하겠다"고 엄포를 놨고 무릎을 꿇은 박 씨와 염 씨를 발로 걷어차면서 실감나는 연기까지 했다.
김 씨는 판돈 260만 원과 한 씨가 끼고 있던 특수안경을 증거물로 압수하고 한 씨에게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밖에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한 뒤 돌아갔다.
염 씨가 "잃은 돈 2천만 원을 없던 일로 하겠다"고 하고 사기도박을 제의했던 박 씨도 "그냥 서로 천만 원씩 갚아주고 끝내자"고 말하자 한 씨는 이에 동의했다.
김 씨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한 씨는 지인을 통해 해당 경찰서에 '김 형사'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봤지만 그런 인물이 없다는 답을 듣고 의심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사기도박꾼들의 연기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염 씨는 한 씨가 돈을 주지 않자 "안되겠다. 김 형사한테 가자"며 박 씨와 한 씨 두 사람을 경찰서로 데려갔다.
먼저 조사받겠다며 염 씨와 함께 현관 안으로 들어간 박 씨가 한참 만에 울상이 되어 나오자 본 한 씨는 더럭 겁이 나 염 씨에게 "잘못했다"며 그 자리에서 현금 120만 원을 건넸다.
돈을 주긴 했지만 김 씨가 경찰이란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던 한 씨는 경찰서를 다시 찾아가 사무실 앞에 붙은 경찰관 사진을 일일이 살펴보고 김 씨 사진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며칠 뒤 다시 염 씨에게 이끌려 경찰서로 갔다.
김 씨가 "조사 좀 해야겠다"며 건물 안으로 데려가려 하자 다시 겁을 먹은 한 씨는 "합의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씨가 이런 식으로 염 씨에게 빼앗긴 돈은 모두 430만 원.
결국 견디다 못한 한 씨는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해당서가 아니라 구로경찰서에 신고했다.
해당서에 신고하지 않은 건 김 씨가 범인들과 끈이 닿아 있는 진짜 경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경찰은 ○○서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김 씨 일당의 범행을 확인해 김 씨를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하고 공범 염 씨를 긴급체포하는 한편 원정도박을 하러 마카오에 체류 중인 박 씨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김 씨 등은 "한 씨가 돈이 많고 사기도박 전과가 있어 경찰을 사칭해 협박하면 겁을 먹고 쉽게 돈을 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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