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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 다양성'이 살길

세계작물 다양성재단(Global Crop Diversity Trust)이라는 국제프로젝트를 들어보셨나요?

대홍수로부터 동물 다양성을 지켜낸 노아의 방주처럼, 급변하는 기후변화와 이에 따를 재앙으로부터 농작물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전세계 작물의 종자를 보관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현재 노르웨이 북쪽 섬인 스발바르드(Svalbard)에 지구종말에 대비한 '씨앗금고(Doomsday Vault)'를 짓고 있습니다.

SBS가 주최한 '서울디지털포럼'에 연사로 참여한 이 재단의 캐리 파울러 대표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유전적 다양성 훼손'이 위기의 시작

그는 작금의 식량위기가 단순한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원래 지구상에는 쌀 종자만 12만 가지에 이를 정도로 식물 유전자가 다양했지만 지금은 농업의 기업화, 글로벌화로 인해 점점 유전자 다양성이 축소되고 있고, 이는 건강한 식량의 증산에도 큰 위협이 된다는 겁니다. 2050년 90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 인구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작물 유전자의 다양성을 지키는 게 필수라는 설명입니다.

'AI'도 '유전적 획일성'이 부른 재난

요즘 그야말로 조류인플루엔자때문에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함께 연사로 참석한 최재천 이화여대 생명학부 교수는 AI의 문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유전적 다양성 문제가 여기에도 해당된다는 지적입니다.

AI 문제가 겉잡을수 없이 크게 확산되는 것은 알을 잘 낳는 닭만 인공적으로 가두고 길러 닭장 안의 유전적 다양성이 복제 상태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한 마리만 감염돼도 좁은 공간에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닭들은 빠른 시간내에 전부 감염되게 됩니다. 당연히 모두 살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에서 유전자 다양성을 가져와야 하는데 우리가 기르는 닭의 원조인 동남아시아의 야생 닭이 현재 멸종 위기에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습니다.  조류의 유전적 다양성이 보존되지 않는다면 AI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게 생명공학계의 경고입니다.

비상걸린 '축산과학원'

우리나라에도 국내 유일의 가금류 종자 보존기관인 축산과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곳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천안시 직산읍 오리농장에서 AI가 확인되면서 그야말로 비상에 걸렸다고 합니다.

36개 가금연구동이 있는 9만9000㎡(3만 평)에 대한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연구자들은 그 안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축산원에는 12만여 마리의 닭·오리가 사육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순수 토종닭과 가축천연기념물인 오골계, 달걀을 많이 낳는 장점을 가진 백색레그혼, 육질이 좋은 로드아일랜드레드 등의 혈통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순수 혈통의 닭이 사라지면 국내 닭·오리 사육 기반이 무너지는 것으로 전염이 빠른 AI가 확산되면서 일부 닭·오리와 종란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이미 피난을 갔다고 합니다.

9개 종류별로 100마리씩 900마리를 경기도 수원에 있는 축산원 산하 축산생명환경부로 옮겼고, 계속 AI 발생 지역이 늘어나자 닭 종란 1080개를 강원도 평창군 한우시험장으로 또 옮겨 놨습니다. 이곳은 청정지역인 대관령 인근이어서 주변에 닭·오리 농장이 거의 없다는게 그 이윱니다. 순수 혈통의 닭을 지켜내고자하는 축산과학원의 치열한 노력도 모두 유전적인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는 생명과학계의 경고와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F.E.W' is few.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앞으로 가장 부족해질 것으로 식량(food), 에너지(energy), 물(water)를 꼽았습니다. 이니셜로 보면 공교롭게도 FEW가 되는데, 이 세가지 자원이 부족해지는 과정을 보면 결국 모든 게 '식량'으로 귀결된다고 설명합니다.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에너지와 물이 필요하고, 에너지와 물이 부족하면 다시 식량이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결국 유한한 자원속에서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장기적인 방안 중의 하나로 극도로 단조로워지고 있는 동식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캐리 파울러 대표는 "북극 근처에 만든 씨앗 금고에서는 다양한 씨앗을 복제해 만약 전 세계 각국이 종자를 잃어버리게 되면 여기서 종자를 다시 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 우려가 현실화될 날이 오지 않도록 인류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편집자주] 지식경제부와 산업계를 취재하는 정호선 기자는 1997년에 경제지 기자로 시작해 2005년에 SBS에 입사했습니다. 좌우명인 '긍정의 힘'과 함께 오랜 경제분야 취재경험으로 차분하고 정돈된 기사로 활약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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