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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소프라노' 유현아 인터뷰 ①

비교적 화창한 이른 봄날, 소프라노 유현아 씨를 회사 앞 거리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목동 파리공원으로 가면서 날씨 등을 소재로 가벼운 대화를 나눴는데, 눈을 완전하게 둘러싼 짙은 선글라스를 쓴 유현아 씨가 가장 걱정하던 건 황사더군요.

황사 걱정을 하면서도 내내 유쾌했던 유현아 씨는 누구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 명랑, 쾌활한 성격이세요?

그렇다고 그러네요, 다들.

- 본인은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저요? 글쎄요... 잘 웃고 잘 울고 뭐든지 하면 크게 해요. 웃어도 크게 웃고. 울어도 많이 울고.

- 재미교포이신데(중학교 때 이민) 한국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죠?

글쎄요, 한국에서 노래한다... 집에, 홈에 와서 하는 것 같아요. 유럽을 많이 여행 다녀서,  제가 유럽에서 많이하거든요, 연주를. 거의 미국에서 하지만.

근데 썸하우, 한국에 날아와서 "이제 서울입니다" 파일럿이 이야기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꼭 집에 오는 느낌들어요.  어떻게 설명을 해야될 지 모르겠어요.

- 저도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왠지 현아 씨는 미국에서 정체성 혼란이 없었을거 같아요.

(정체성이 뭐냐는 유현아 씨의 질문이 있었고, 아이덴티티라는 답을 들은 뒤)

그래요, 모르겠어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제가 하는 일이 연주자로서 국제적으로 하니까  굉장히 외국 사람들하고 경쟁이 심하잖아요. 그런 데서 막 수련을 하면서, 아무리 열리고 오픈 마인드 된 사회라고 해도 유럽에서 저를 볼 때는 '화이트 코케이시언' 백인 같이 안 본단 말이예요.  아마 그런 사회에서 프로페셔널로서 막 그렇게 경쟁하면서 연주하는 때문인가 보지요.

- 결론적으로 정체성 혼란은 전혀 없었다?

저는 별로 못 겪었어요.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제가 교회 안에서 컸기 때문에(부친이 목사)  조금 이렇게 보호받은 그런 면이 있었는 지는 모르겠어요.

- 지겨우시겠지만 왜 음악을 시작하셨는지, 이 질문 안 드릴 수 없네요.

제가 노래를 시작한 것은 짧게 말씀 드려서 93년도 저희 남편이 필라델피아에서 그 카 재킹이라고  차 강도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때 우리 아기가 5개월 반, 그때 저는 분자생물학을 했거든요.  예일대 마치고 저는 의대 쪽으로 가던 거였는데 그렇게 되면서 제가 많이 힘들어 했을 때  저희 언니가 "노래해라"했죠. 지금처럼 국제 무대에서 노래하는 연주자를 바라보거나 생각해서 성악을 시작을 한 것이 아니예요.

저는 아픔을 잊기 위해서 했어요.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너무 아팠고 또 잘 기억은 안나는데  기절을 많이 했대요. 제가 많이 힘들어서 좀 왔다갔다 하고 그랬나봐요. 그랬을 때 음악을 통해서  제가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노래하면서 음악을 하면서 위로를 받고 그래서 노래하면서  제가 체험을 했으니까 그런거 있잖아요, 해봐서 약이 정말 효과가 좋으면 뭐해요? 서로 시키잖아요. 하라고. 음악이라는, 그 너무나 뭐라고 그럴까, 저한테 주신 선물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음악이 얼마나 위대한 힘이 있나면 뭐 나이가 적고 많고, 배우고 못 배우고 그게 전혀 상관이 없어요.  누구나 만질 수 있고, 누구나 터치할 수 있고, 누구나 들을 수 있고, 인조이할 수 있고.

그리고 사람들이 살면서 다 상처가 있잖아요. 모양과 농도가 조금씩 다를 뿐 다 있으니까 그거를 만져주고 위로해주고 좀 인스파이어 해주고 덜어주고... 그 힘이 음악에 있는 것을 제가 체험을 했기 때문에 그거를 나누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 실의에서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고 하셨는데, 분자생물학 공부를 계속 하실 수도 있지 않았나요?

글쎄요... 그 길이 조금 달랐던 거 같아요.  제가 의학을 했던 것은 제가 그것을 해서 고치는 것,  그리고 봉사하는 것, 사람들 도와주는 것, 그런 것을 하겠다고 해서였는데. 그 길이 굉장히 길잖아요.  의사라는 게 미국에서는, 한국은 잘 모르겠는데, 미국은 굉장히 길어요. 제가 사고났을 때만 해도  거기서 적어도 11년은 더 했어야 됐어요. 그래야 제가 하는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정신도 왔다갔다 했었고 그것만(의사 공부) 놓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놨던 거예요.  손을 다 놨었는데, 노래하는 것은 왜냐하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희 아버지가 클래식 음악을  계속 틀어주셔서 음악을 들으면서 자고 음악을 들으면서 깨고 제가 기억나는 데까지하면  항상 클래식 음악이 있었어요. 그래서 음악으로 위로를 받는다고 성악과에 들어간 거지,  하나의 프로페셔널로 하겠다고 들어간 것이 아니었어요.

☞ [취재파일] '불굴의 소프라노' 유현아 인터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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