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쓴 것이 죄인가요?"
최근 머리 수술로 모자를 쓰고 다니는 회사원 홍모(38.전주시 서신동) 씨는 며칠 전 자신의 아파트 현관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홍 씨가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는 찰나, 한 초등생이 막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자주 단지 내에서 마주쳤던 아이인데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반갑게 씩 웃으며 발걸음을 옮기던 홍 씨는 그러나 바로 눈 앞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쾅'하고 닫히는 것을 맥없이 지켜봐야 했다.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탄 초등생이 홍 씨가 다가가자 겁에 질린 표정을 하며 재빨리 닫힘 버튼을 누른 것.
당황한 홍 씨는 몇 분을 기다려 엘리베이터에 타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뒤에야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수술로 생긴 흉터를 가리려고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이 어두운 현관에서 언뜻 보기에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 사건의 피의자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범 이모(41)씨의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가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된 이후 홍 씨처럼 본의 아니게 초등생이나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 등으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는 억울한(?) 남성들도 늘고 있다.
지난 주말 평소 즐기는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던 회사원 정모(50. 익산시 영등동) 씨도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친 한 주민이 갑자기 함께 걷던 자녀를 품에 꼭 안은 채 자신과 거리감을 두려는 것을 느꼈다.
설마 자신 때문일까 하는 생각에 계속 길을 가던 정 씨는 이어 마주친 초등생 무리도 재잘대던 소리를 멈추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발걸음을 빨리 하자 운동을 하느라 땀에 젖고 헝클어진 머리를 가리려고 썼던 모자를 재빨리 벗어버렸다.
4살, 5살 난 딸을 둔 이모(40.전주시 평화동) 씨는 최근 들어 딸들과 함께 외출할 때면 모자를 써서 얼굴 일부를 가리거나 인상이 어두운 남성에게서 최대한 거리감을 두는 버릇이 생겼다.
틈날 때마다 어린 딸들에게도 이런 내용을 주지시키는 이 씨는 "아무래도 이런 사람들을 보면 경계심을 가지게 된다. 모두 범죄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멀리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애들 손을 더 꽉 쥐게 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뉴스에 나온 사건들을 보면 평소 특별한 원한이 없어도 누구나 대상이 될 수 있더라. 밖에 나가면 애들을 두고 잠깐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불안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손을 꼭 잡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고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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