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티베트 vs 부탄…'엇갈린 운명'에 전세계 관심

히말라야 산자락에 이웃한 티베트와 부탄이 극명하게 엇갈린 길을 걸으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고난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 인접한 부탄은 왕가가 직접 나서 100년 왕정을 청산하고 민주화의 길에 나선 것.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어 있는 정학적인 위치 외에도 티베트와 부탄은 수천년의 장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불교를 신봉하고 형태는 다르지만 절대권력을 쥔 지도자가 존재했다는 점 등 여러 모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이런 티베트와 부탄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현대사를 갖게 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부터다.

청나라의 느슨한 지배를 받던 티베트는 20세기 남아시아의 전략적 기지를 차지하기 위해 침공에 나선 영국의 손에 들어간다.

이후 영국은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티베트는 청나라 군대가 완전히 물러난 1913년 감격의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티베트는 독립국가로 존재했던 탓에 중국의 위협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1950년 인민 해방군이 진주하면서 다시 중국에 강제 편입됐다.

이후 티베트는 수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리는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반면 19세기 말 치열한 내전 끝에 지금의 세습 왕조가 들어선 부탄은 강대국의 위협을 상대적으로 덜 받으며 평온한 100년을 보냈다.

부탄이 영국과 중국, 인도 등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평온한 시기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자주권을 강대국에 넘기고 스스로 몸을 낮춘 덕분이었다.

1907년에 들어선 부탄 왕조는 1910년 식민지 확장에 나선 영국에 외교권을 넘겨줬고 1949년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와 비슷한 형태의 조약을 맺었다.

덕분에 부탄은 인도를 등에 업고 북쪽 국경을 봉쇄, 중국의 위협을 차단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부탄은 스스로 민주화를 택한 탓에 왕정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피를 흘리지 않았다.

부탄의 4대 왕으로 지난 1971년에 즉위한 지그메 싱계 왕추크는 2005년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결심을 발표했다.

또 그의 아들인 지그메 케사르 현 국왕도 부친의 유지를 받든 덕에 큰 마찰 없이 100년 왕조를 마감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는 역사적인 총선에 돌입할 수 있었다.

(뉴델리=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