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에 지어진 근대 일본 전통식 가옥을 둘러보는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가옥 자체가 이른바‘와후(わふう:和風)’ 즉, 일본풍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감안해 설계된 집이어서 일본식 집의 특징을 한눈에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집주인이 비교적 최근까지 살았던 곳이어서 사람의 때가 묻은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로 치자면 한옥 중에서도 남산골 한옥마을 같은 견학용이 아니라, 윤 보선 전 대통령의 고택처럼 실제 주거용으로 쓰였던 전통 한옥을 떠올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본식 집을 둘러보다 보니,한옥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언뜻 겉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아 보였지만 실제 안으로 들어가니 너무 많이 다르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구조는 물론이고 각종 가구의 모양새와 격자무늬의 크기까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주 보던 한옥과 많이 달랐습니다. 사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그 집에 투영되는 만큼,한옥과 일본 가옥이 틀린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떤 점이 다른지 흥미가 생겼습니다. 집에 대해서는 완전 비 전문가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근대의 일본 전통 가옥을 본 느낌을 적어 보겠습니다.
집 주인과 집에 얽힌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처음 집을 처음 지은 사람은 후지타 요시사부로(藤田好三郞)라는 사업가였다고 합니다.건축관련 사업을 하는데다 일본식 집에 조예와 애정이 깊어,직접 집을 설계해 세밀한 부분까지 공을 들여 1919년에 완공했다고 합니다.가족들과 함께 살 집이어서 생활하기 편리한 부분을 우선 고려했지만,사업상 손님을 집에 초대할 경우도 많아 접대하는 부분도 많이 감안했다고 합니다.
일본 재벌 야스다 일가 3대 거주한 일본 전통 가옥 관람
그렇지만 후지타씨는 이 집에 산 지 4년 만에 집을 팔았습니다. 집 자체가 ‘작품’이어서 그의 어린 5명의 자녀들과 함께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끼던 집을 내놓았는데 이를 당시 4대 재벌 중 하나로 꼽히던 야스다(安田) 집안의 야스다젠시로(安田善四郞)씨가 이 가옥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야스다씨 일가는 3대가 75년 동안 이 집에서 살다가, 지난 1996년 자연환경 역사유적 시민 단체인‘일본 내셔널 트러스트(JNT)’에 소유권을 넘겼다고 합니다. 이 단체는 이후 기금 등으로 지난해까지 보수작업을 마쳐, 제한적으로 일반인에게도 공개를 하고 있습니다.내셔널 트러스트는 지난 1908년에 영국에서 결성된 국제적인 환경 단체로 한국에서도 8년 전 결성돼 지난해 한옥 전시회를 여는 등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스다 집안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붙일까 합니다. 이 집안이 혹시나 한국과 과거사면에서 직접적인 악연이 있을까 싶어 조심스레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현재 기아의 최희섭 선수와 인연이 있더군요. 최희섭 선수의 약혼녀였던 야스다 아야씨가 바로 이 야스다 집안 사람이더군요.당시 아야씨는 유명한 일본 재벌 가의 딸로 알려졌는데,그 재벌이 야스다 그룹입니다.그리고 하나 더,비틀즈의 존 레넌의 미망인인 오노 요오코도 야스다 재벌 창업주의 장녀의 증손녀라고 합니다.족보를 따지면 존 레넌이 증손녀 사위인 셈인데,만일 최 선수가 결혼을 했다면 존 레넌과 먼 친척이 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일본 집구조 일반적으로 안쪽이 넓어…응접실은 서양식·일본식으로 나뉘어
서두가 길었습니다. 집 구조(사진)입니다. 앞쪽 현관쪽은 좁고,뒤쪽 살림집은 넒은 구조입니다.혹시나 일본식 가옥의 특징인가 싶어서 물었더니,그냥 가옥 부지가 그런 모양일 뿐이라고 하네요.'쩝~!'하지만, 일반적으로 안쪽이 넓은 구조의 가옥이 많다고는 합니다.
현관에서 바로 이어지는 곳이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인데, 서양식과 일본식 2가지가 있더군요. 서양식 응접실까지 만든 이유가 풍류 때문이었는지,아니면 당시 서양과 사업상 거래가 자주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 됐건 두 곳 모두‘스키야주쿠리(數奇屋造り)’라는‘품위 있는 다실(茶室)풍’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또 의자와 같은 가구는 물론 다다미와 벽지 하나하나까지 예사 물건이 아니라며,가이드 할머니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는 듯이 설명을 해주더군요.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대단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만...
일본식 응접실입니다(왼쪽 위). 다다미가 깔려있고,족자나 꽃꽂이 등으로 장식된‘도코노마(床の間)’가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 거실입니다.기모노를 입은 아주머니가 보는 쪽이 정원입니다. 정원을 잘 볼 수 있도록 배치하는 것이 응접실 설계의 중요 포인트라고 합니다. 사쿠라나 매화꽃이 필 때면,손님을 초대해 다실에서 차를 마시며 정원을 감상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또 거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손님과 담소를 나누거나 일본식 단시(短詩)인 하이쿠(俳句)를 읊으며 보낸다고 합니다.
이제 집주인 일가가 실제 생활을 하던 집의 안쪽 (오른쪽 위)으로 들어갑니다. 살림집은 그러나 응접실과 여러 곳에서 차이가 납니다.응접실은 공적(公的)인 공간이고,살림집은 사적(私的)인 공간인 만큼 구별해야 된다는 의식 때문이라고 합니다.
먼저 천장이 낮아지고,기둥의 두께가 얇아집니다. 또 격자의 크기도 작아집니다.손님에게 보여주는 응접실과 달리 미관을 고려할 필요가 적고,아늑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편안함(comfort)과 공식적이지 않음(informality),이 두 가지가 살림집의 기본 속성이라고 합니다.
이외의 다른 세세한 부분도 차이가 났는데, 예를 들어 옻칠에도 구별을 두더군요.즉 응접실은 보이는 문틀과 창틀 모두에 옻칠을 했지만,살림집으로 들어오자 마자 옻칠을 아예 안 하는 식입니다.심지어 응접실과 경계가 되는 문틀의 경우 응접실쪽은 옻칠을 한 반면,바로 살림집쪽은 그냥 둘 정도로 철저하더군요. 문뜩 일본인들의 이중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겉마음(다테마에:建前)’과‘속마음(혼네:本音)’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논리적 비약일지는 모르지만,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철저히 구분하는 속성이 가옥 구조에도 투영되지 않았나 싶더군요.
부엌에 있는 찬장과 냉장고입니다.특히 제 눈길을 끈 것은 당시 냉장고였습니다.위칸에 얼음주머니를 넣고,아래칸에 음식물을 뒀다고 합니다.옛날 냉장고는 저랬겠구나 싶었습니다.부엌의 안쪽까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만,안쪽에는 옛날 가스스토브와 싱크대도 있다고 하더군요.찬장과 냉장고,싱크대와 가스스토브는 모두 한 세트인데,1920년대 일본 상류층에서 유행하던 이른바‘스즈키 시스템 키친’이라고 합니다
목욕실입니다(왼쪽 아래). 노송나무로 만든 목욕통이 눈에 띕니다. 여자들이 화장을 하던 방(오른쪽 아래)입니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것이 큰 거울과 작은 거울입니다.목욕실과 더불어 가장 안쪽에 있습니다.
2층은 거실과 서재로 구성
2 층입니다. 2층은 연회를 베풀 수 있는 넓은 거실과 서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15세기 때 정립된‘쇼인주쿠리(書院づくり)’양식의 전형이라고 합니다.불교 선종(禪宗)의 서원양식이 관원이나 무사의 주택에 채택된 것인데,현재 일본식 주택은 거의 이 양식이라고 합니다.우리가 일본 사극을 볼 때 흔히 보는 집의 구조이기도 합니다.
이 가옥은 도쿄 시내에 있습니다.그렇지만 관광객은 물론 근처에 사는 일본인들조차 이 집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지난해 보수공사를 막 마친 데다,이 집의 소유주인 일본 내셔널 트러스트(JNT)가 이 집을 어떤 식으로 공개하고 활용해야 할 지 아직 결정을 못 내렸기 때문입니다.
JNT측이 현재 가장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방안은 이 집을‘도쿄문화의 발신기지’로 삼겠다는 것입니다.즉 진짜 사람이 살았던 일본식 집에서 일본식 다도(茶道)와 꽃꽂이 같은 일본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것이죠. 외국 관광객은 물론 내국인, 특히 일본문화를 느낄 기회가 없는 대도시의 젊은 세대를 위한 체험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입니다
그래서 저도 일본 문화의 일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사진은 다도를 체험하는 모습입니다.아시다시피,일본의 다(茶)문화는 우리와 달리 차를 마시는 형식 자체를 더 중시합니다.불교 의식을 다도의 의식에 응용하고,다도를 수련해서 얻은 경지와 참선을 통해서 얻은 경지는 같은 것이라고 하는‘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을 강조하죠.그래서 엄격하고도 복잡한 격식과 절차를 정해놓고 있습니다. 사진에 나온 일본 여성이 차를 따라주기까지 20분 이상 걸리더군요.
이 사진은 꽃꽂이 체험 시간입니다. 꽃꽂이도‘화도(華道)’로 불리는데,에도 시대때 여러 가지 유파로 갈려서,지금은 큰 유파만 2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일본 전통 실내 유희인 부채 던지기(とうせんきょう:投扇興) 놀이입니다. 두 팀으로 나뉘어 방 가운데 놓인 표적을 향해 펼친 부채를 던져서 맞추는 놀이입니다. 에도시대 중기 이후 부녀자와 아이들 사이에게 성행했던 서민적인 놀이라고 합니다.
일본 전통 가옥 둘러보며 한옥에 대한 무관심 반성
일본식 집을 둘러보고 일본 문화를 체험하면서,어렸을 때나 박물관에서 보던 한옥과 우리의 전통문화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면서 보던 한옥의 구조에 어떤 깊은 배려가 배어 있었을까,전통 가구나 창호지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무엇보다 그 곳에서 우리 선조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연상하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한옥에 대해서 너무 아는 것이 없구나 싶어 반성이 됐습니다.불쑥 일본 친구가“한옥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무척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이 집을 나오면서 안동까지는 아니더라도,아이를 데리고 남산골 한옥마을이라고 한 번 가봐야지라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사진 = 유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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