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과 밀가루를 포함한 50개 생필품을 정부가 집중 관리하도록 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 한 말이다.
최근 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등과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맞물려 수입물가 상승폭이 무려 22.2%를 넘는 등 물가상승 불안이 커지자 구체적으로 정부가 '물가관리'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분주해 졌다고 한다. 도데체 50개 품목에 뭘 넣어야하는지를 놓고 고민에 빠진 것이다.
물론 정부도 물가를 관리한다. 공공요금을 통해서다. 물가지수 산정을 할 때 공공요금 비중이 16%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포함시키라고 한 것은 쌀,밀가루를 비롯해 민간기업들이 가격을 결정하는 품목들이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상품들이라는 말이다.
만약 어떤 업체가 물가상승 분위기에 편승해 가격을 과도하게 올린다면 경쟁 업체는 그보다 가격을 낮춰 물건을 많이 팔려고 하고 이때문에 결국 가격을 올린 업체도 다시 내릴 수 밖에 없는 시장 원리가 작동되는 품목들이다. 시장 원리를 흔드는 독과점 업체들의 가격 담합에 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속적으로 감시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 정부가 어떻게 관리를 하겠다는 것인가? 방법은 민간기업들에 압력이나 협조(?)를 구해 가격을 못 올리도록 하거나 아니면 가격을 올린 업체들에게 각종 행정조치를 통해 불이익을 주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일단 서민들 먹고 살기 힘드니까 그렇게라도 해야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이런 방법은 가격 인상 시기를 늦추거나 다른 제품에 가격 인상을 떠넘기는 '전시행정' 이지 서민부담이 주는 행정이 아니다.
쉽게말해 '50개 품목'을 정해놓고 가격인상을 억제하도록 하면 기업들은 50개 품목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제품가격을 올리거나 아니면 정부 눈치를 좀 보다가 나중에 지금 올릴 가격을 인상시킨다는 것이다.
정부가 물가를 관리하는 '시장주의적' 방법은 저 유명한 케인즈 시대부터 내려온 분명한 정책이 있다.
바로 긴축정책을 쓰는 것이다. 정부 재정 지출을 줄이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시중에 돈이 덜 풀리도록 하는 것이다. 긴축정책은 다시말하면 성장률을 낮춰잡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정책을 통해 긴축의지를 보이면 소비자들도 허리 띠를 조르게 되고 가격을 올리려는 기업들도 소비자들의 수요가 줄기때문에 올릴 수 없게 돼 물가상승 추세가 주춤해 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지금 우리 경제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 4%대 후반' 보다 무려 1% 이상 높은 6% 성장을 올해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시장에 긴축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돈을 풀 수 있는 정책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래놓고 물가를 잡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다.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또다른 요소인 원화 가치 하락에도 이른바 '강만수 재정부 장관 효과'가 있다는 것이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입물가가 오르는 직접적 원인은 국제유가와 원자재, 곡물가격 급등 탓이다.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한데다 경기 침체에 접어든 미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달러 가치를 계속 떨어뜨리면서(금리인하) 증시에서 투기세력의 돈이 빠져 유가와 원자재 시장에 쏠리고 있기때문이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원.달러 환율이 떨어져야 정상이지만 유로나 엔이 달러에 대해 강세를 보이는데 비해 우리나라 원화만 '나홀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표면적이고 직접적인 이유로는 석 달 연속 우리경제가 수입이 수출보다 많은 적자를 보이면서 달러는 적게 벌어들이는데 달러를 찾는 수요가 많아졌고, 지금 시점이 외국투자자들이 본국에 송금을 하는 때인데다 엔 캐리트레이드 청산까지 겹쳐 우리 증시나 채권시장에서 번 돈을 달러로 바꿔야 돼 달러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단기간에 급격히 오르고 있는 심리적 배경은 '강만수 효과' 라는 설명이 점점 늘고 있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이 취임 초 물가관리보다는 경상수지에 더 신경을 쓰겠다는 말을 여러차례 하면서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아 우리 정부가 원.달러 환율 상승을 용인하겠구나' 는 기대를 갖게 됐고 일부 투기적 요인까지 개입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대로 올 6%대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정부의 입장 발표는 물가보다는 경기부양에 신경쓰겠다는 것으로 외국투자자들에게는 해석이 돼 정부가 환율 개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고 있다.
결국 새 정부가 '물가' 보다는 '성장'에 무게를 둔 채 경제운용을 하려고 하면서 '50개 생필품 물가관리'라는
70년대식 '전시행정' 카드를 꺼내든 것은 이 대통령이 강조한 '시장주의'에도 어긋나고 다른 상품의 가격이 오를 것이기때문에 중산층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이라고도 할 수 없다.
미국의 경기침체와 고유가,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악재 속에서 '물가'도 잡고 '6% 성장' 도 할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여러 경제연구소들의 공통된 견해다.
더 이상 시장과 국민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지말고 보다 솔직한 경제정책을 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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