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다? 비싸다?
말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일단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에 쉽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국적 제약사의 약값이 한 달에 백만 원이라도 '껌값'으로 볼 수 있고, 십만 원이라도 '금값'으로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 환자 분들은 대개 약값이 비싸다고 말하기 쉽다는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싸면 아이템 'kill' 이고, 비싸면 꼼꼼하게 따져볼 만하다, 고 느꼈습니다.
사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건 바보짓일 수도 있습니다.
약값이 싸다 비싸다고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최선정 전 복지부장관은 (1999년 복지부 차관 재직) 약값을 시장에 맡겨야지 그걸 싸다 비싸다고 어떻게 얘기하냐며 취재진을 나무랐습니다.
사람들도 보통 약값은 '비싸게 마련이려니… 그냥 그러려니' 하곤 합니다.
계속 그러려니.. 해도 괜찮을 만큼 약값 시장이 환자들에게 호의적일까요.
# 약값, 시장은 실패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된다면 최 전 장관의 얘기가 맞습니다.
과문한 개인이 시장가격에 이의 제기할 수 없죠.
가령 수입 승용차가 아무리 비싸도…뭐 하는 수 없습니다.
차량 외관, 인테리어, 주행 성능, 안전성 등 승용차에 대한 정보가 소비자에게 오롯이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3000cc 차량에 2000cc 보다 더 많은 돈을 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소비자가 나름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있습니다.
약값은 전혀 다릅니다. 의사 도움 없이는 내 병명도 알 수 없는 데다, 무슨 약을 먹어야 할 지 그저 눈앞이 깜깜합니다.
우리는 단순한 감기약일지라도, 감기약마다 성분이 어떻게 다르고, 내 몸에 어떤 효과를 발휘할 지 모릅니다.
약에 대한 정보는 바닥입니다. 보건경제학자들은 이걸 '시장실패'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가격은 약에 대한 정보를 꽉 틀어쥐고 있는 생산자에게 유리하게 정해지게 마련입니다.
비록 복잡하지만, '약값'은 다른 재화의 가격들과 달리 그 값이 과연 적당한지 따져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보이는 손' 건강보험공단
마침 제약사 '한국BMS'가 만든 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의 가격 결정이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2월 말 "뉴스추적" 아이템을 확정했습니다.
의약품 시장은 실패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보이는 손'이 되어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험료를 내는 시민들을 대표해 제약사와 가격 담판을 벌이게 됩니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14일까지 한국BMS와 3차례 협상을 벌였습니다.
한국BMS는 약 한 알에 69,000원을 달라고 했고, 건보공단은 51,000원만 주겠다고 맞섰습니다.
한 알에 18,000원 차이. 연 6백억 원에 달하는 백혈병 치료제 시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엄청난 차이입니다.
'보이는 손'이 된 건보공단이 '스프라이셀'에 대한 정보를 얼만큼 확보하느냐가 협상의 관건입니다.
약효에 대한 정보, 부작용 사례에 대한 정보, 다른 백혈병 약에 대한 정보들, 모두 가격에 섬세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 시장실패의 극단
취재 도중 건보공단 vs 한국BMS의 협상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제약사는 대체 뭘 근거로 한 알에 69,000원을 요구하는 걸까요.
협상 보고서 이곳 저곳에서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라는 약 이름이 보였습니다.
2002년 당시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 들어와 우리 귀에도 익숙한 약입니다.
당시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가 약값이 낮다며 시판을 미루는 바람에 환자와 시민단체들이 무척 반발하기도 했었죠.
보고서에서 한국BMS는 그 약값을 근거로 한국 정부에 69,000원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가격을 정한 공식이 아주 명쾌합니다.
지금 글리벡을 먹는 환자는 하루에 138,000원 정도를 부담하면 된다, 근데 스프라이셀은 하루에 2알만 먹어도 된다, 그러니까 138,000원/2알=1알에 69,000원. OK?
반면, 건보공단은 협상 초기 약의 부작용에 대한 자료도 없었습니다.
공단이 이렇게 정보 결핍에 시달리면 약값은 치솟는 시장실패의 극단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데도 약값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팔짱 끼고 있어야 할까요.
# 글리벡 약값은 어떻게 정했나
스프라이셀은 글리벡 약값을 들이댔는데, 그럼 2002년에 글리벡은 뭘 내세웠을까요.
보건복지부 건강정책심의위원회 회의록을 뒤졌습니다.
글리벡 약값 기준은 단 한 줄로 적혀 있었습니다.
복지부 曰 : "A7 약값 산정 방식"
뭔지는 모르겠지만 'A7' 약값 산정 방식으로 글리벡 약값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A7' 방식은 보건복지부 고시에 적혀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스위스, 독일 이렇게 7개 나라 약의 공장도 출하가격 평균에 부가가치세를 붙인 게 'A7' 약값이라는 겁니다.
이 방식에 따라 우리나라는 약효가 뛰어난 '혁신적 신약'(글리벡 포함)을 수입할 때 그 A7 약값의 65%~80% 가격으로 들여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조금 복잡하죠, 간단하게 그냥 선진국 약값의 70% 정도 쳐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30% 정도 깎아주는 거니까 그닥 비싸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걸 따져보면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 70% 쳐주면 싼가
일단 우리가 수입할 미국 약값을 100원이라고 칩니다.
이걸 Red-book 책자 가격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이 가격에는 제약사가 정부에 주는 공식 리베이트가 30원~40원 정도 붙어있습니다. 그럼 실제 약값은 60원~70원 정도죠.
근데 우리나라는 100원의 65%를 쳐서 65원에 들여옵니다. 그럼 이 65원이 국내 실거래가가 됩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좀 거칠게 계산했습니다만 대충 이렇습니다.
미국 약값은 또 유별나게 비싸서 약값을 얘기할 때 보건경제학자들도 일종의 예외 나라로 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23,000원 하는 글리벡은 A7 선진국들의 가격에 육박하고, 우리와 국민소득이 비슷한 타이완보다는 20% 가량 비싸졌습니다.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의 표현을 빌면, "이런 좀…. 어처구니없는 제도"입니다.
이런 식으로 다국적 제약사들이 오리지널 약값을 선도하면, 국내 제약사들의 제네릭이나 개량신약의 약값도 덩달아 올라갑니다.
2007년 기준 국민건강보험 지출에서 약제비는 9조 원 가량이었는데, 이 가운데 3조 원을 다국적 제약사가 가져갑니다.
재정 파산을 막으려면 앞으로 5년 동안 보험료를 매년 8%씩 올려야 한답니다.
# 'A7' 나도몰라
'A7' 제도를 누가 만들었는지 말 그대로 추적했습니다. 유시민, 이태복 전 복지부 장관을 찾아갔습니다.
자신들도 잘못된 제도라고 생각해서 어느 장관 때, 어떤 사람들이 만든 정책인지 보고하라고 했는데, 속 시원한 설명을 못 들었다고 합니다.
관련 서류가 없다고 둘러댄 공무원도 있었다고 인터뷰합니다.
복지부가 A7 제도 도입을 결정한 1999년 당시 장관을 지낸 김모임 전 장관을 찾아갔지만,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당시 차관이었던 최선정 전 장관은 아예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약값도 시장에 맡겨야 하기 때문에, 지금 누가 이 정책을 들고온다고 해도 자신은 소신대로 결재할 거라고 답했습니다.
방송 하루 전 날, 우여곡절 끝에 1999년 당시 담당 과장과 통화에 성공했습니다.
"1998년 의약품의 실거래가를 싹 조사해 다국적 제약사들의 약값을 30% 정도 떨어트렸는데, 제약사들이 그때부터 악악대면서 one-drug one-price 정책을 주장하더라. 즉, 미국에서 100원 받으면 한국에서도 100원 받게 해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럼 너희들이(제약사) 대책을 가져와바라, 해서 고육지책으로 만든 게 A7 약값"이라는 겁니다.
그는 100 달라는 걸 70~80 준 건데, 당시 복지부가 다국적 제약사들에 끌려갔다고 얘기하는 건 터무니 없고 뭘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덧붙였습니다.
#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취재 도중 힘들게 만난 다국적 제약사 직원은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회사 안에 가격을 결정하는 팀이 따로 있다, 가격 결정 정보는 IMS라는 통계회사에서 유료로 제공하는데, IMS는 한국의 어떤 병원에서, 어떤 약이, 얼만큼, 얼마에 팔리는지 조사한다. 제약사가 그 두꺼운 책자를 열람하는 데만 천만 원 가량 드는데, 그 정보를 써서 약값을 매긴다. 원가, 마케팅, 이런 비용 감안해서 약값을 정하는 게 아니라, 약값은 그 나라의 환자들이 얼마를 낼 수 있느냐,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느냐를 보고 정하는 것이다."
즉, 환자로부터 뽑아낼 수 있을 만큼 돈을 뽑아낸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격 책정에도 IMS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다년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일부 병원과 의사들에 대한 마케팅 비용의 실체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방송에 나간 해외 여행 접대, 병원에 대한 기증과 기부, 의사 강연료 부풀리기, '기믹'이라는 선물 공세, 의사들의 호텔 숙박료 뻥튀기 등 케케묵은 관행이 약값 거품을 빚어냅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 지금 이 시각
오늘 3월 14일. 건보공단과 한국BMS 간의 협상이 결렬된 지 60일째입니다.
약가협상지침에 따르면 협상이 결렬될 경우, 60일 안에 복지부가 직권으로 약값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복지부 약제급여조정위원회는 지금 이 시각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의 약값을 정하는 회의를 진행중입니다.
오늘 약제급여조정위원회는 정부가 약제비를 줄여보겠다며 보험약값 정책을 완전히 뜯어고친 뒤 처음 열리는 회의입니다.
앞으로 밀려올 신약값 결정의 선례로 두고 두고 남을 중요한 자리입니다.
방송은 그제 나갔지만, 약값이 어떻게 결정될 지 지켜볼 일입니다.
백혈병 환자는 아니지만, 다달이 보험료를 내는 우리 자신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3월 12일 밤 11시 15분 방송 www.sbs.co.kr/new/tv/pur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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