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때마다 끔찍한 생각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피해자와 용의자가 모두 숨졌기 때문에 사건의 실체를 완벽하게 밝혀내긴 어렵게 됐습니다.
이런저런 의혹들이 난무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사망 당시의 정황이라도 되짚어 보겠습니다.
이런 되짚음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무한 억측과 궁금증을 푸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물론 수사가 종결되고 나올 결론과 제가 취재된 내용을 근거로 정리하는 내용이 일부 사실과 다를 수도 있음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 6분만에 3명을 살해?
가장 큰 의혹으로 제기되고 있는 부분이죠.
손수레를 든 이씨가 현관을 통해 들어갔다가 첫번째 가방을 가지고 나오기까지 6분밖에 안 걸렸다는 점.
아무리 힘 좋은 장사라도 어떻게 3명이나 되는 사람을 살해하고 옮기는 데 6분밖에 걸리지 않은 걸까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범행은 이 때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용의자 이호성은 2월 18일 오후 4시 무렵 김씨 아파트로 들어갔습니다.
김씨의 승용차를 몰고 지하주차장을 통해서 말이죠.
이렇게 추론하는 근거는 CCTV 화면 때문입니다.
언론에 공개되진 않았습니다만, 이씨가 찍힌 주차장 CCTV 화면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형사를 통해 확인한 내용인데, 아쉽게도 이씨와 김씨가 함께 있었는지 까지는 확인을 해주지 않더군요.
어쨌든 확실한 건 이호성은 오후 4시 이후에 주차장을 통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오후 5~6시쯤, 김씨의 셋째 딸이 귀가합니다.
한 시간쯤 뒤인 저녁 7시 무렵에는 둘째 딸이 귀가하고요.
이씨가 가방을 들고 나간 시각이 밤 9시 50분이니까, 세 모녀는 오후 4시에서 9시 50분 사이에 살해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 명이 모두 한 자리에 있다 살해 당했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정황상 돈 문제로 김씨와 먼저 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 이유 없이 딸들부터 목졸라 죽일 이유는 없었을테니까요.)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가지
① 김씨와 막내딸이 집에 있다 살해당하고, 뒤늦게 귀가한 둘째가 살해당했거나,
① 김씨가 살해당한 후에 귀가한 막내딸과 둘째 딸이 차례로 살해당했거나.
컴퓨터가 켜져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김씨와 딸이 함께 있다가, 김씨가 살해당하고 그 뒤에 딸들이 살해 당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은데요.
용의자가 숨졌으니 무얼 근거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세 딸을 살해한 이호성씨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김씨의 차를 몰고 나와 1층에 세워둔 뒤에 현관으로 걸어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주차장엔 CCTV가 있는데 조명이 환히 켜져 있는데다, 왕래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이호성 입장에선 부담스러웠을 수 있죠.
주차장 보다 현관이 더 밝지 않나 싶으시겠지만, 사건 당일 김씨의 아파트 현관 불은 꺼져있었습니다.
다른 곳은 모두 켜져 있었는데 유독 김씨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만요. 좀 이상하죠?
김씨 아파트엔 모두 16개의 CCTV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명이 꺼져 검게 나온 화면은 16개중 김씨 집 입구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15개는 모두 환한 화면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는데, 나중에 화면을 확인한 아파트 경비원도 왜 불이 꺼졌는지를 의아해 하더군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껐거나, 깼거나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호성은 침대 시트를 벗기고, 매트리스 핏자국에 잉크를 뿌리고, 매트리를 베란다에 옮겨 놓은 다음, 손에 묻은 피를 닦은 것으로 보입니다.
(김씨의 혈흔은 모두 3군데, 침대와 방바닥, 세면대에서 발견됐습니다.)
시신을 옮길 때가 깜깜한 밤이었으니 환한 주차장 보다는 얼굴이 잘 안 보일 밖을 택했을 가능성이 큰 거죠.
이호성이 가방 5개와 침대시트를 모두 옮기는데 걸린 시간은 35분 정도였습니다.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수습했다기 보단 살해된 시신을 '옮겼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죠.
이 때 이호성은 옆집 주민과 마주치기도 했는데요, 옆집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이호성에게 "뭐 하시냐?"고 묻자 이호성은 흠칫 당황하면서 여행을 가는데 짐을 옮긴다며 적당히 둘러 댔다고 하는군요. (그동안 이호성이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큰 의심은 안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살해 도구가 둔기, 그렇다면 준비된 범행?
부검결과, 김씨는 후두부가 함몰되긴 했지만 직접적인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였고, 함께 살해된 작은 딸과 막내딸도 모두 질식해 숨졌습니다.
큰 딸만 두개골 골절로 뇌출혈이 동반된 고도의 머리 손상으로 사망했면부 수차례 충격으로 심한 손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김씨가 둔기에 맞아 숨졌다면, 이씨가 둔기를 준비해 갔거나, 집에 있던 둔기를 찾아 살해했을텐데, 개인적인 소견으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나 싶습니다.
담당 경찰들도 이 씨가 김 씨 모녀를 '주먹'으로 때려서 둔기로 쓸만한 물건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검안과 부검에서 본 결과도 큰 딸의 경우 어깨를 꽉 잡고 얼굴을 마구 때린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김 씨의 두개골이 함몰된 이유는 침대 모서리에 부딪치면서 생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3년 전 조씨는 어디에?
비슷한 사건은 3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2005년 봄, 광주의 한 조직폭력배 출신 동업자 조 모씨가 이씨를 만난 후에 지금까지 실종됐던 일이 있었는데요.
조씨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이씨였기 때문에 이씨는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별 다른 물증을 밝혀내지 못해 이씨는 그냥 귀가하게 되고, 사건은 미제로 남게됐죠.
이야기를 나눠 본 형사들은 조씨 역시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 만약 이런 가정이 맞다면, 범행에 한 번 성공해 본 경험이 있는 이씨가 이번 사건을 제법 치밀하게 계획해서 진행했을 수도 있습니다.(알리바이의 치밀한 정도와 범행을 계획한 기간은 비례하겠죠 물론.)
실제로 이씨의 이번 범행에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 첫번째 :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숨진 김씨가 운영하는 참치 집 종업원은 20일 오후 김씨 번호로 문자메시지를 받습니다.
'다른 아주머니가 갈 거니까 식당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과 '교정치료 중이어서 통화가 어려우니 문자로 연락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김씨는 별다른 소지품 없이 교정기와 귀고리를 한 상태였습니다.
교정기 때문에 통화가 어렵다니요. 어딘가 좀 어설프긴 합니다만, 김씨가 살아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겠죠.
- 두번째 : 김씨의 '승용차'
이씨는 김씨의 SM5 차량으로 네 식구의 시신을 운반한 뒤 김씨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다시 가져다 놓았습니다.
물론 차는 깨끗하게 세차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씨의 지문도 생수통에서만 발견됐지요.
주차장에 차를 가져다 놓은 인물이 이씨인지 다른 인물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의도가 담뿍 담긴 행동입니다.
아파트 관리자나 김씨 친지들에게 괜한 의심을 사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마지막
- 세번째 : '여행 가자는 제안'
교통카드 확인 결과, 김씨의 큰 딸은 18일 밤 외출해 목동, 신촌서 친구들과 있다 자정 무렵 헤어진 뒤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수도권에 위치한 학교에서 올라오는 차안에서 큰 딸은 친구에게 '어머니가 재혼할 수도 있어서 며칠동안 가족들이 광주로 여행을 갈 것'이란 말을 합니다.
세 모녀를 살해한 이씨에게서 전화를 받기 전부터 큰 딸은 여행을 갈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① 이씨가 알리바이를 위해 여행을 흘렸을 가능성과
② 정말로 여행을 가기 위해 식구들에게 제안을 했을 가능성.
그러나 이씨가 사건이 있은 후에 차 모씨라는 내연녀와 함께 모텔에 투숙했던 점이나, 어머니와 큰 딸을 주먹으로 잔인하게 살해한 점으로 볼 때 순수한 마음으로 여행을 계획했을까 의문스럽습니다. (이씨는 차씨와 함께 모텔에 묵는 동안 8시뉴스가 나오기 전에 TV를 껐다고 하는데요. 경찰 조사에서 차씨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신의 뉴스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이 공개수사로 전환하던 날, 이씨는 한강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한 가족을 몰살시킨 용의자의 투신 소식에 수사를 하던 경찰도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모두 허탈함에 한숨을 내쉬었을 겁니다.
이호성이 검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도가 끼친 유익성이 무엇일까 싶었습니다.
이 보도가 SBS 단독보도로 시작됐기 때문에, 힘들게 취재했던 사건팀 기자들 모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특히나 아무 것도 모르고 취재기자와 함께 CCTV를 지켜보고 이야기를 해 주셨던 경비 아저씨는 이 일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무릎꿇고 '죄송하다'는 말을 되뇌인들 그 분과 그 분 가족들께 무슨 위안이 되겠습니까.
취재 현장에도, 사람들 마음에도 한바탕 폭풍우가 휘몰아쳐 지나갔는데 뭔가 잔뜩 어수선한 기분만 남아 있습니다.
힘든 취재의 끝이 이렇게 허탈하고 힘겨울 때도 있군요.
블로그에 글을 적는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부디 이런 끔찍한 사건이 다시는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