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동절기 전국 학원 지도·점검 결과'. 3쪽 짜리 보도자료입니다. 기사 가치는 신문으로 치면 1,2단 짜리가 될까말까. 그래도 심심해서 찬찬히 한 번 훑어 봤습니다.
먼저 점검 범위.
전국 시,도교육청이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말까지 학원에 대한 특별 단속을 실시했답니다. 4,236개의 학원을 점검했고 위반사항이 적발된 곳은 2,016개. 대충 길가에 간판을 건 학원 둘 중에 하나 찍어도 뭔가 구린 데가 있다는 얘기군요.
호기심 발동 국면. 교육부 통계를 뒤져 봤습니다. 지난해 6월말 현재 통계로 잡힌 학원의 숫자 7만5,978개. 입시 및 보습학원으로 분류된 곳만 3만394곳입니다(예능학원,기술학원 등을 다 제외하고 말이죠).
계산기가 필요해집니다. 3만394개 중에 4,236개라... 13.9%만 점검받았군요. 단속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구나, 운좋게 점검 안 받고 넘어가는 학원이 不知其數구나...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두번째, 처분 내역.
중대한 위반 사항일 경우 등록 취소나 교습정지 처분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65%는 경고나 시정명령입니다. 그나마 금전적인 손실을 안겨 줄 벌금과 과태료 부과 내역은 요렇습니다. 벌금 0건, 과태료 105건.
그런데 과태료 105건의 총합이 6,210만원. 한 건당 약 59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 셈입니다. 편법을 동원해서 수십~수백 명의 학생들로부터 학원비를 수만~수십만 원씩 올려받아도 평균 59만원만 내면 된다고? 이런걸 <껌 값>이라고 합니다.
귀찮지만 인내를 발휘해야 하는 국면.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을 찾아봤습니다.제23조 과태료 조항.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법이 요모양이니 학원들이 과태료 무서워 하겠나? 급증하는 학원들을 단속 인력 확대로 대응할 수 없다면 一罰百戒로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만. 슬슬 짜증이 나는 국면에 들어갑니다.
세번째, 세무서 통보.
학원 원장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행정처분이 바로 요겁니다. 돈을 쓸어 담는 곳일수록 더 그렇겠죠. 4,236곳 점검했는데 세무서 통보 40건. 1%가 채 안 되는군요. 수강료 터무니없이 높여 받거나 신용카드는 안 되니,현금으로만 내라고 강요하는 곳이 이 정도 밖에 안 된답니다. 학원들이 대체로 깨끗하게 영업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야 자연스러운데 잘 돼지 않습니다.
더구나 세무서 통보 40건은 모두 서울 지역입니다. 경기,부산,대구,광주,대전...(나머지 10개 시,군 호출은 생략) 등에 있는 학원들은 서울에 있는 학원보다 훨씬 양심적이라고 보라는건지...대충 넘어가자고 스스로를 다그쳐도 요거 쉽지 않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보통 두번째는 약칭을 써야 하는데 약칭 만들기가 참 고약합니다.교과부? 교과기부? 그렇다고 예전처럼 교육부라고 하면 과학기술계에서 엄청 섭섭해 한답니다)가 학원비 안정화 대책이라고 붙여 놓은 구절입니다.
* 소비자 물가상승률 대비 과다 인상시 수강료 조정위원회를 통한 엄격한 조정명령제 시행
* 학원의 수강료 게시·표시제 이행을 통한 투명화 독려 및 이행점검
* 불법학원에 대한 행정처분 기준 강화(경중에 따른 중처벌 조치)...
이거 표절이다 싶습니다.
지난해 3월20일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 경감 대책의 한 구절.
* 공정하고 투명한 사교육 시장 조성을 위해
- 학원 '수강료 표시제' 도입, 수강료 과다 인상에 대한 실질적인 조정명령 시행, 교재비 등의 명목으로 수강료를 편법 인상하는 행위 엄중 처벌 및 수요자를 통한 수강료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요즘 要職에 오르신 분들이 판판이 깨지고 있는 자기 표절, 중복 게제의 냄새가 풀풀 납니다. 아니면 매번 숙제를 미루는 학생이거나.
사실 학원에 대한 지도·점검은 각 시,도교육청이 담당하며,교육부는 행정처분 내역만 통보받는다고 합니다. 시,도교육청에 이래라,저래라 하기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계산기로 사칙연산해서 종합 통계를 만들 뿐이라는 얘기도 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학원이,어떤 위반 사항으로, 어떤 행정처분을 받았는지 교육부에서 알 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실태를 정확히 모르니 나오는 대책도 매년 자기 표절일 수 밖에요. 그러면서도 자기 '나와바리(이런 말 쓰면 원래 안 됩니다)'도 아닌 통계는 꼬박꼬박 보고 받아 자료를 만들어 냅니다.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 생활물가 경감대책을 지시하면서 학원비를 꼭 찝어 얘기했답니다.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학원 업무가 시,도교육청 고유 업무이기는 하지만 학원비 문제가 심각한데 중앙 정부가 모른척 할 수만은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나와바리' 지키는 데 도가 튼 공무원들을 어떻게 움직이게 만들지, 관전 욕구가 생깁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계산기 두드리면서 글 썼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하지만 책상머리에 앉아서 계산기 두드리는 역할 이상을 국민들은 정부에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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