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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 찬양' '징병제 축하' 친일파 재산 환수

"이제껏 조선은 문약한지 오래되어 깊은 병에 걸린 것과 같았네…천황의 교화가 두루 적시지 않은 곳이 없네"

28일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로부터 재산 국가귀속 결정을 받은 김서규는 일제시대 군수, 도지사 시절부터 일본천황과 조선총독부 통치를 찬양하는 장문의 한시를 발표한 친일파로 드러났다.

위원회에 따르면 1919년 함경남도 안변군수로 재직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운동에 참여하려는 군민을 단속해 상해임시정부에서 현상금까지 걸었던 김서규는 1925년 10월 조선총독부의 선전 잡지인 '조선'에 총독부의 통치를 칭송하고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장문의 한시를 발표했다.

그는 한시에서 "명치성대 경술년에 일본과 한국이 비로소 일가가 되었네. 빛나는 천자의 명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니…"라고 쓰고 3.1운동에 대해서는 "군중들이 잠시 미혹에 빠진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평했다.

그는 이후 1929년부터 전남·전북 도지사 등을 거쳐 1935년 조선인 친일 세력의 최종 권력 기관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올랐다.

위원회는 "김서규가 과거 친일행위를 바탕으로 직책만으로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는 중추원 참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며 "참의가 되기 전 군수 시절 일제로 부터 받은 토지도 친일재산으로 환수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다른 재산 환수 대상자인 이진호, 이경식도 군서기, 군수, 도장관,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며 '징병제 요망 운동'을 벌이고 '징병제 실시 축하 한시'를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로 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총독부 학무부장, 중추원 참의·부의장을 거쳐 일제에 적극적인 협력을 한 인물에 대해 총독부가 부여하는 최고 직위인 중추원 고문에 이른 이진호는 1944년 1월 22일 매일신보에 학병을 미화하는 제목 '다 함께 바치자 벽혈(碧血)'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게이오 대학에 다니는 둘째아들을 입영시켰다면서 "씩씩한 자태, 그 명쾌한 태도, 벙긋벙긋 웃으며 떠나가는 젊은이들을 바라보고 나도 웃으며 떠나 보냈다…징병이 우리의 당연한 의무인 이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3년 임기의 중추원 참의에 5번째 연임됐던 이경식 역시 1942년 조선유도연합회에 기고한 한시에서 조선내 징병제 실시를 환영하면서 "기뻐하고 감격함이 모두의 마음이네…내 창과 방패를 수리해 그대와 함께 가리"라고 표현했다.

위원회는 이들이 1914년부터 1928년까지 군수, 도지사, 지방토지조사위원회 위원장 직위에서 받았던 보은군의 전·과수원 4필지 등 총 9필지를 친일의 대가로 받을 것으로 보고 환수 결정을 내렸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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