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타계한 김병관 동아일보 전 회장은 제2대 부통령인 인촌 김성수의 장손이자 일민 김상만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1989년부터 동아일보 사장 겸 발행인을 맡으며 동아일보를 이끌었다.
1934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전 명예회장은 1958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68년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다음 그해 34세 나이로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이어 관리과장과 관리·광고부 차장, 광고1부장 등을 거쳐 76년 판매국 부국장, 77년 판매 및 광고국장으로 승진했으며 81년 상무이사와 83년 전무이사, 85년 동아일보 부사장을 지냈다.
1987년 고인이 발행인에 취임하던 첫 해에 동아일보는 서울대생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특종 보도했다. 동아일보 측은 "고인은 군사정권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성역 없이 보도하도록 기자들을 격려하는 등 동아일보가 언론자유를 쟁취하고 수호하는 데 늘 앞장섰다"고 밝혔다.
김 명예회장은 발행인이 된 이래 신문업계의 정상 자리를 줄곧 다퉈 왔으며 언론계의 지각을 바꾼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동아일보가 메이저급 언론사의 자리를 지키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90년대 들어 '제2의 창간'을 기약하며 충정로에 대형 사옥과 광화문에 동아미디어센터를 건립했으며 오금동 공장과 대구 공장, 안산 공장을 준공해 초고속 윤전시설을 갖췄다.
이같은 시설 확충으로 동아일보는 1993년 조간으로 바꿨으며 이어 98년 전면 가로쓰기와 섹션신문으로 변혁을 이어갔다. 특히 90년대 중반 인터넷 등장으로 인한 활자 독자의 감소세에 대응해 1996년 동아닷컴을, 2000년 동아사이언스를 설립하는 등 사업을 다각화했다. 최근에는 케이블TV와 제휴하는 등 다매체 언론 기업으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1995년 중국 리펑 총리와 단독 회견을 가졌는가 하면 98년에는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김용순 위원장의 초청으로 남측 언론 경영인 가운데는 처음 북한을 방문했다. 95년에는 동아일보와 중국의 인민일보,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 3사간의 정기적인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자고 제안하는 등 세계 각국 유수 신문들과의 교류에 나섰고 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교육 분야에서도 고인의 발자취는 뚜렷하다. 1999년 고려대와 중앙중고교, 고려중고교 재단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으로 취임, 고려대 개교 100주년(2005년)을 전후해 지하중앙광장, 100주년 기념관, 화정체육관 등을 차례로 완공했다. 문화 영역에서는 '완창 판소리 발표회' 등을 주최하고 창극 아리랑의 러시아 지역 순회 공연을 지원하는 등 국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한국신문협회 회장을 비롯해 한국디지털교육재단 이사장, 일민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교육 문화 언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그는 2006년 암 진단을 받아 투병해오다 지난해 12월20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으나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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