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무참히 붕괴되면서 서울성곽의 4대문 혹은 8대문 중 유독 남대문인 숭례문의 현판만 가로로 놓지 않고 세로로 세운 까닭이 화제가 됐다.
풍수지리설에 근거, 화기를 누르기 위해 세워 단 것이었다는 설명이 가장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져 왔다.
이를 좀 더 학술적인 차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양은 풍수지리적 특성에서 볼 때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이 허약하며, 조산이 되는 관악산이 지나치게 높고 화기가 드세다는 약점을 지닌다.
특히 관악산은 그 뾰족한 봉우리 생김새가 화산의 기운을 지닌다.
이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들이 남대문과 동대문에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남대문은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인 '崇'(숭)자와 오행에서 화(火)를 상징하는 예(禮)를 수직으로 포개어 놓아 관악산이 뿜어내는 화기를 막고자 했다.
이렇게 되면 "불로써 불을 제압하고 다스린다"는 뜻을 구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숭례문 편액을 이렇게 설명해온 민속학자나 풍수학자들에게 그 출처를 물었으나 한결같이 "글쎄, 어디에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있지 않나?"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조선시대사를 전공하는 권오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에 대해 "현판을 세운다 해서 무슨 화기를 막겠느냐. 어디에도 그런 근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에 의하면 유독 숭례문 현판을 세운 까닭은 조선왕조를 뒷받침한 유교의 절대경전인 논어에서 유래한다.
논어 태백편에서 공자가 남긴 말 중 하나로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흥어시, 입어례, 성어락), 다시 말해 시에서 흥이 생기고 예에서 일어나고 악에서는 이룬다"는 말이 그 근거라는 것이다.
인의예지신과 같은 유교의 가치이념을 음양오행설에 접목해 서울성곽 문 이름을 지은 조선왕조의 이데올로그들은 남쪽에 예를 배정해 이를 활용한 숭례문이란 이름을 지으면서 그 현판을 세우게 된 까닭이 바로 이 논어 구절 중 '立於禮'에 있다는 것이 권 교수 설명이다.
다시 말해, 예를 통해 사람은 일어난다 했으므로 숭례문이란 현판 또한 세워서 달게 되었다는 것이다.
권 교수의 해석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화기 때문에 숭례문 현판을 세워 달았다는 설명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예컨대 조선전기 전국 지방지의 집대성으로 일컬어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한양 궁궐에 관해 자세한 기록을 남겼으나 이런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박물학자 이규경) 또한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방대한 백과사전 중 경사편5 논사류1에서 조선의 궁궐 액자를 다루면서 숭례문에 대해서는 "세상에 전하기를 양녕대군 글씨라 하며,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그것을 떼어 버려 유실되었다가 난리가 평정된 뒤에 남문 밖 연못 근방에서 밤마다 괴이한 광선을 내므로 그곳을 파서 다시 이 액자를 찾아 걸었다고 한다"는 정도의 언급만 남겼을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울성곽 다른 대문이 모두 3글자임에도 동대문만 '흥인지문'이라고 해서 굳이 '之'라는 글자를 덧보태 4글자로 만든 까닭을 풍수학계에서는 한양의 좌청룡인 낙산의 허약함을 보충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나, 이 또한 근거를 찾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