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수능 등급제 실험'이 결국 한번의 실험으로 끝났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2일 수능 등급제 보완을 위해 2009학년도부터 등급과 백분위, 표준점수를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등급제가 시행되기 전인 2007학년도의 표준점수제 체제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것으로 사실상의 등급제 폐지를 의미한다.
공교육을 살린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와 준비 부족으로 대학과 수험생, 학부모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함으로써 등급제는 제대로 시행도 되지 못한 채 불과 1년 만에 퇴출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 등급제 도입 결정에서 퇴출되기까지 = 수능 등급제는 수능시험 성적을 점수없이 오로지 등급으로만 표시하는 파격적인 제도로 2004년 교육혁신위원회가 2008학년도 새 대입제도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도입이 결정됐다.
등급제의 취지는 대입에서 수능 비중을 낮추고 학생부 비중을 높여 공교육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수능 비중을 낮추려면 대학들이 입학전형에서 수능 점수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되도록 줄여야 했다. 이를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등급제'였다.
학생들의 수능 성적을 1에서 9까지 등급으로만 표시함으로써 수능시험이 당락을 결정짓는 잣대가 아니라 일종의 자격고사가 되게끔 한 것이다.
등급제를 도입한 배경에는 단순히 수능 비중을 축소하는 것 외에 점수 1~2점 차이로 학생들의 서열을 가르는 폐단을 없애 대학서열을 깨보려는 궁극적 목표도 숨어있었다.
학생들을 등급으로 나누면 한 등급 안에 다양한 점수의 아이들이 섞이게 되고 그만큼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의 레벨이 다양해져 고착화된 대학서열 구조를 깰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보다 큰 관점에서는 점수 1~2점 차이로 학생들을 평가하지 않고 잠재력으로 평가한다는 교육 패러다임의 획기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등급제는 이렇듯 3년 전에 도입이 예고됐고 그 취지 또한 나쁘지 않았으나 막상 지난해 첫 시행되고 난 뒤 학교 현장에서는 예상했던 것 이상의 대혼란이 빚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등급제의 '불투명성'과 '불합리성' 때문이었다.
등급 외에는 점수가 공개되지 않으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점수가 정확히 몇점인지, 왜 이 등급을 받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원 대학을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혼선이 초래됐다.
또 원점수가 아무리 높더라도 등급 커트라인(구분점수)에 걸려 오히려 등급은 낮아진다거나 같은 점수여도 어느 영역, 어느 과목에서 틀리느냐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는 등 기현상이 속출하면서 학생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점수 1~2점 차이로 당락을 가르는 폐단을 막겠다고 했음에도 여전히 1~2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게 되는 모순도 드러났다.
여기에 수리영역 수리 가형은 불과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이 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난이도 논란이 일었고 막판에 물리II 과목의 정답 번복 사태까지 불거지면서 수능시험에 대한 신뢰도 자체가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수험생, 학부모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이 예고되면서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는 등급제는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게 된 것이다.
◇ 등급제 실패 원인은 = 등급제가 실패로 끝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학생부 비중 강화, 수능 비중 약화'라는 본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데 있다.
입시에서 수능 비중을 줄이는 것을 전제로 등급제를 도입했지만 막상 2008학년도 입학전형의 뚜껑을 열어 보니 수능 비중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고 여전히 당락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전형 요소로 존재했다.
수능 비중이 줄어들 것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고 3년 간 입시를 준비해 온 수험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대학들, 특히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들의 책임도 크다.
이들은 학생부 비중을 높여달라는 정부 지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능비중이 강화된 전형을 신설하거나 학생부 등급 간 점수간격을 좁혀 고의로 학생부 비중을 낮추는 등 등급제를 외면했다.
대학들 스스로 "학생부 비중을 50% 이상 확대하겠다"고 발표해 놓고도 막상 2008학년도 입시를 코앞에 두고 "50%는 명목상 비율이지 실질 비율이 아니다"고 발을 빼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교육당국은 이 때문에 등급제 실패의 책임을 종종 대학탓으로 돌리곤 했지만 근시안적 행정으로 불과 1년만에 또다시 입시제도 변경을 초래했다는 비난은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철저한 준비 부족과 행정 소홀로 대학과 일선 고교의 협조와 수험생, 학부모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함으로써 결국 등급제를 실패로 이끈 근본적 책임을 지게 됐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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