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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고' 코리아냉동 착공부터 곳곳에 뇌관

속전속결 인허가, 마구잡이 공사, 겉핥기 감독이 불씨 제공

40명의 인명을 앗아간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는 작업 편의를 위해 소화시설의 작동을 인위적으로 차단, 참변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밝혀졌다.

허술한 법망을 피해 간 속전속결식 인허가와 공사기간을 단축하려는 마구잡이식 공사, 수박 겉핥기식 관리.감독이 후진국형 사고를 부른 공범으로 지목된다.

결국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나 다름없었던 코리아냉동의 착공부터 화재발생까지 곳곳에 도사린 뇌관을 짚어본다.

◇법망 빠져나간 속전속결 인허가

코리아냉동의 냉동창고건물(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지하1층 2만3천338㎡, 지상1-2층 7천245㎡)은 지난해 6월29일 건축허가를 받았고 11월5일 사용승인이 났다.

착공신고는 7월10일, 중간에 지하 냉동창고의 설계변경이 10월12일 처리됐고 소방시설준공검사는 10월19일이었다.

코리아냉동은 앞서 4월24일 건축허가를 접수한 뒤 건축허가가 나기 전 철근 콘크리트 옹벽을 쌓고 기초공사를 벌이다 이천시에 적발돼 6월14일 경찰에 고발조치됐다.

그러나 이천시는 고발 보름뒤 건축허가를 내줬다. '건축주측이 공기 단축을 위해 허가전 착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통상적으로 고발과 함께 건축허가를 내준다'는 것이 이천시측의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이다.

1만㎡ 이상의 건축물은 환경영향평가 대상으로 건축허가 신청에서 허가까지 통상 2-3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우선 착공해 벌금을 감수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코리아냉동 측은 불법공사 강행후인 8월30일 지하층의 설계변경을 신청했으며 10월12일 설계변경허가를 받았다.

이어 일주일뒤인 10월19일 이천소방서로부터 소방시설완공검사를 받았다.

냉동창고 사용승인 현장실사를 벌인 건축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현장실사 당시 건축법상 내화구조 및 피난시설 등의 법적 기준을 충족해 적격판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며 "건축물 규모가 너무 커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속전속결식 인허가에 대해 이천시 관계자는 "창고건물이 시공이 간편한 철골조 샌드위치 패널구조이기 때문에 신속한 공사 및 소방시설 검사가 가능했을 것"이라며 소방당국에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라고 떠넘겼다.

화재참사의 조짐은 소방시설완공검사 직전에 감지됐다.

소방시설완공검사 사흘전인 10월16일 오후 냉동창고 외벽에서 용접작업이나 드릴작업중에 화재가 발생했고 소방장비 9대와 소방관 28명이 출동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천소방서 관계자는 그러나 "화재가 자체진화된데다 별다른 피해가 없어 소방시설완공검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비한 법규에 '나몰라라' 면피성 감독

코리아냉동 창고건물의 설계.감리회사는 건축주(시행.시공)인 공모(47.여)씨가 거느린 코리아2000건축사사무소로 확인됐다.

건축사법 제19조와 건축법시행령 제19조는 건축사가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에 관한 업무를 행한다고만 돼 있을 뿐 건축사사무소가 계열회사에서 시공하고 있는 건축물에 대한 감리업무를 수행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은 없다.

'한 회사'(동일 회사)가 설계.시공.감리를 함께 수행할 경우 부실 공사가 우려되나 관련법은 이에 대한 제재조항이 없어 이천시측은 별 부담없이 허가를 내줬다.

인.허가 서류를 확보한 경찰이 이 부분을 문제 삼으려다 '적법' 사실을 확인하고 혀를 찼다는 후문이다.

소방법은 연면적 1천㎡ 이상 지하건축물의 경우 건축물을 방화벽으로 구획해야 하고, 지하 공연장.집회장(바닥면적 300㎡ 이상)은 내부마감 재료를 방화상 지장이 없는 재료를 사용하고 비상구를 2개 이상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창고건물은 용도특성상 사람의 출입이 많지 않고 물류설비 등 적재물의 관리, 이용을 이유로 방화구획, 비상구 설치 등의 의무에서 제외됐다.

냉동창고 건물의 설계변경에 따른 소방시설의 축소도 문제되지 않았다.

코리아냉동측은 소방시설 착공신고(9월25일) 당시 스프링클러헤드 795대, 옥내 소화전 25개, 비상방송시설인 확성기 72개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소방시설 완공검사(10월19일) 때는 스프링클러헤드 349개, 소화전 22개, 방송시설 45개로 줄어들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준공을 앞두고 창고의 냉동시설 면적이 늘어나 통로에 주로 설치하는 스프링클러 등 소화장비의 수가 축소됐다"며 "냉동시설의 경우 스프링클러와 소화전은 설치면제 대상이므로 소방법상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1995년부터 시행된 소방시설공사업법은 코리아냉동 같은 창고건물의 경우 소방공사감리업자가 지정돼 현장 점검을 거쳐 필증 교부를 요구하면 소방서에서는 서류검토만으로 필증을 내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냉동창고의 소방시설완공검사 전에 소방관의 현장점검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소방공무원이 시공현장을 방문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민원인의 불편을 최대한 줄이고자 (소방공사)감리제도가 시행된 것"이라며 문제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경기도는 사고발생후 시공과 감리를 동일회사가 할 수 없도록 해당 건축사법과 건축법의 개정을 정부에 건의키로 했다.

또 방화 피난시설 설치의 의무가 배제된 대규모 지하창고에 대해 피난시설 설치 기준을 강화하고, 건축물 준공후 30일 이내에 선임토록 돼 있는 방화관리자를 소방완공검사 전에 의무적으로 선임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마련해 건의키로 했다.

그러나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하면 으레 따라오는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다.

◇위험천만한 주먹구구식 공사

코리아냉동측은 작업시 오작동으로 인한 작업불편을 덜기 위해 스프링클러와 비상벨, 방화셔터 등 화재발생시 인명과 직결되는 소방시설을 작동불능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증기가 가득한 밀폐공간에서 냉매주입과 배관, 전기작업 등 점화원(불티)을 생성할 수 있는 위험한 공사를 한꺼번에 진행하면서도 화재예방보다는 작업진척이 우선시 된 셈이다.

게다가 경인지방노동청 성남지청에 따르면 20억원 이상 공사의 경우 현장소장을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선임해 노동부에 신고해야 하나 코리아냉동의 냉동설비공사(공사비 24억2천만원)를 담당한 유성ENG측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에 따라 중국동포 등 인력시장에서 급조한 일용직들에 대한 안전교육과 유증기 농도 측정 등 세심한 현장관리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경인지방노동청 성남지청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책임자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300만원에 불과하고, 공사착공후 14일안에만 안전책임자를 신고하면 된다"며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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