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친철한 복희씨>의 마지막 단편 소설 <그래도 해피엔드>를 보면 택시 기사의 말 중에 "당근이죠"란 대목이 나옵니다. 낼모레 여든이신 박 선생님이 이 말을 어떻게 아실까. 여쭤봤습니다.
= 제가 하나 잃었지만 네 애들이 결혼해서 열 네 식구입니다. 우린 자주 모이고 소통을 많이 해요. 그러면 자연히 자식으로 하는 간접 경험이 많습니다. 자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텔레비젼을 보더라도 같이 보면 비판도 하고 이러지 않습니까? 신문같은 것도 열심히 읽고. 젊은 작가의 작품들도 그냥 내가 뭘 취한다기보다는...어디다 쓴 적도 있는데, 내가 쓰는 거와 읽는거 둘 중 하나만 하지 접어라 이러면 쓰는걸 접을지언정 읽는건 접지 못할 것 같아요. 읽는 것이 나에게 주는 어떤 즐거움이라고 할까? 어려서부터 읽는 걸 좋아했어요. 이런 걸 통해서 광범위하게 동시대인과에 호흡하는 느낌을 갖죠.
제가 기자로서 느끼는 건데 가끔은 기사써봤자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온다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영화, 연극, 음악, 소설...모든 창작자가 적어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드리라고 믿습니다.
"사람이 나이 먹으면 허무해진다고도 하고...'다 부질없는 짓이다.' 이런 말들도 하시고 그러는데... 독자들이 글 읽을 때만 잠깐 위안을 받거나 '좀 다른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지 돌아서면 또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보면 선생님도 좀 허무해지실 때는 없나요?"
= 그거야 뭐 내가 교과서도 아니고 누굴 가르칠려고 쓴것도 아니고요. 그냥 어떻게 보면 내가 즐거워하면서 쓰고. 또 정말 <거저나 마찬가지>(소설 제목) 이런 소설은 아니꼬운 세상을 가볍게 풍자하면서 자기에 대한 기쁨도 느끼지 않나요. 자기 위안도 되고 그런 것이 또 읽는 사람들한테 즐거움도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냥 저는 저처럼 이렇게 그 시대 내가 살아온 그시대를 아주 세밀하게 정직하게 사실적으로 그려온 작가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역사와는 다르게 제가 잊혀진 오랜 후에라도, 문자니까, 그것이 어떤 한 시대를 증언하는데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시대에 무슨 역사 책에 대통령이 어떤 갈리고 무슨 시대가 되고 그런거 말고 보통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다는 서민의 생활사같은 것이 되어서라도 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에서 마지막 소설집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하려다 관두셨다고 했는데 진짜 언제까지 쓰실 계획이세요?"
= 글쎄...머리에 이 다음에 뭐를 써야지 그런 건 있지요. 작가는 그게 없으면 항상 하는 얘긴데 보통 주머니나 예금통장에 돈이 한 푼 없을 때 허전한것처럼 허전해요. 그러니까 이 다음에 뭐를 써야지 하는 것이 두 세 개가 굴러다녀야지 편합니다 .
그게 없으면 정말 너무너무 허전할 것같아요. 그렇지만 아유, 이만해서 접어야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많이 하죠. 그 왜 모든 직업에 정년이란 게 있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주책을 부리게 되면 어떻게 되나. 왜 늙으면 쓸데없는 말도 하고 그러잖아요. 적절지 못한 말도 하고. 나는 참 그런 걸 싫어하는데 나도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접어야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해요. 근데 '나는 이걸로 끝이다' 그랬다가 또 쓰게 되면은 겸연쩍잖아요.(그래서 그 말은 안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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