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SBS 뉴스의 대선 개표방송을 보면서 '과유불급'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입니다. SBS 뉴스의 개표방송은 현장감이나 기동성에 있어서 다른 방송을 압도했습니다. SBS 뉴스가 전한 17대 대선 개표는 축제의 한마당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개표방송의 뜨거운 열기가 실제상황에 비추어 적절한 온도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뉴스비평의 주제입니다.
SBS 뉴스의 개표방송은 독자적인 당선예측시스템을 가동하고, 하루 종일 각 후보들을 따라다니며 밀착 취재하는 등의 뛰어난 기동력을 보였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 되는 시점에 집을 나서는 모습을 지붕 높이에 설치한 카메라로 찍어 단독 보도하는 것과 같은 생생한 화면도 있었습니다. 당선예측시스템이 이날 밤 8시 30분 현재의 득표율로 예측한 각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실제와 거의 일치할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SBS 뉴스가 이 후보의 당선을 어떤 언론보다 먼저 선언하고, 남보다 앞서 그를 당선자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바로 당선예측시스템이 가져 온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SBS 뉴스가 이 후보의 당선을 공표한 과정을 보면 너무 서둘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날 SBS 뉴스는 특집 8시뉴스를 시작하면서 바로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공표했습니다. 뉴스는 "SBS는 오늘 저녁 8시 5분을 기해서 이명박 후보가 대한민국 제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음을 공표합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함께 방영한 화면에는 이미 '제 17대 대통령 이명박'이라는 자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날 뉴스는 이 후보의 당선을 확정지은 근거로 8시 5분 현재 당선예측시스템이 계산한 당선확률이 99%라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까지 진행된 개표율은 6.1%에 불과했습니다. 처음부터 1위와 2위의 표차가 크게 났기 때문에 이 후보의 당선확률이 99% 쯤 되리라는 것은 당선예측시스템이 아니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이며, 따라서 당선이 확실하다고 보도할 수는 있지만, 당선되었다고 공표하면 틀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SBS 뉴스는 일찌감치 당선을 공표하고, 이 후보를 당선자로 호칭함으로써 8시 5분이후의 개표방송은 개표방송이 아니라 '이 당선자' 중심의 특집방송이 되고 말았습니다. 뉴스는 개표가 10%밖에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후보의 고향인 포항 덕성리 주민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뉴스는 개표가 33.5% 진행된 상태에서 "당선이 확정되면서 경호도 국가원수 급으로 강화되었다"고 보도하고 현직 대통령수준에 준하는 경호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지만, 이것도 너무 앞지른 보도였습니다. 실제 화면에 보이는 경호상태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국가적인 큰 행사를 최선을 다해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선의 경우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50%가까운 득표를 했지만, 60% 남짓한 투표율을 감안하면 총 유권자 중 30% 정도의 지지를 받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유권자의 70%가 투표를 하지 않았거나 다른 후보를 지지한 상황에서 축제 일변도의 개표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를 먼저 생각했어야 합니다.
아직 이 후보의 당선이 공식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개표방송은 ‘당선자’ 중심의 축제보다는 각 후보들의 움직임을 골고루 추적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을 심층 분석하고, 선거결과에 따라 정국이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앞으로 남아 있는 쟁점은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시간이 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뉴스가 '당선자'외의 후보를 등장시킨 것은 그들이 '패배'를 시인하는 장면뿐이었습니다. 뉴스는 정동영 후보가 조금 뒤 대통합민주신당 당사에 도착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힐 예정이라고 보도했는데, 정 후보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를 예단한 것은 너무 앞지른 태도였습니다.
개표가 14.7% 진행된 상황에서 청계천 광장의 빛의 축제를 소개하는 아나운서는 "빛의 축제처럼 대한민국은 화려한 빛 가운데 들어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펼쳐졌습니다. SBS 개표방송은 이회창 후보의 패배선언 보도에 바로 이어 "시청 앞 광장 축하공연"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청 앞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을 보도했습니다.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를 방문했던 이명박 당선자가 시청 앞의 특설무대에 오르자 그에게 "국민성공시대를 열어 주세요."라고 쓰인 케이크와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100인의 소망이 담긴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 판넬을 기념품으로 증정하는 행사까지 가졌습니다. 5년 전 노무현 당선자가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해 화제가 된 적은 있었지만, 언론사가 당선 환영행사의 주최자가 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SBS 뉴스는 선거 다음날인 20일 "이번 대선으로 진보와 보수진영 사이에 10년 만에 두 번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뉴스가 정권교체를 염원하던 유권자들이 대선 결과를 보고 분출하는 기쁨의 축제와 새 시대에 거는 이들의 희망을 보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뉴스는 이 후보의 당선을 축제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려, 시대의 변화를 좀 더 차분하게 분석하여 보도하는 균형감각을 보였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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