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라이센스 뮤지컬의 한계

[라이센스] : 경찰 허가의 의사 표시와 에에 대한 공증의 뜻으로 교부되던 표찰


라이센스의 (백과)사전적 정의인데 지금은 이런 뜻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문화예술계에서 책이나 음반의 출판에 대한 권리, 공연에 대한 권리를 얘기할 때 많이 쓰인다.

어떤 원작(original)이 있으면 이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는 자와 양도받는 자가 있을 터, 법률적으로나보나 작품성으로보나 본디 오리지널이 카피(라이센스)에 대해 甲의 위치에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문화상품은 국경과 인종을 넘나들면서 컬츄럴 디스카운트(cultural discount.문화적 할인)가 발생한다.

문화적 진입장벽을 넘어야하는건데 예를 들어 삼성이 LCD TV를 일본에서 팔든 미국에서 팔든 그 곳 소비자들은 그저 국내에서와 똑같이 TV로서 받아들이겠지만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이 <명성황후>를 일본이나 미국에서 공연한다면 문화적 차이에 따르는 관객 호응도의 감소를 감내해야한다는 얘기다.

뮤지컬 <뷰티풀 게임><헤어 스프레이>는 라이센스 작품이다.

전자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에서, 후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대본과 악보를 가져왔다.

연출, 무대, 의상, 안무(가사는 말할 것도 없고)는? 국내 프로덕션이다.

물론 원작을 많이 참조했겠지만.

따라서 원작을 못본 나로서는 "원작에 비해~"운운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또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어떤 문화상품이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을 때 원작과 똑같다고 해서 꼭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심지어 그 반대도 있을 것이다.

뮤지컬 기획제작사 설앤컴퍼니판 <뷰티풀 게임>의 축구 장면-일명 사커 댄스-은 상당히 박진감있다.

게다가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발상의 전환도 보여준다.(축구는 7명이 하는 것이라는 것도^^)

LG아트센터의 한정되고 고정된 무대에서 펼쳐지는 축구 씬은 마치 여러 대의 카메라가 워킹하듯이 펼쳐진다. 그 카메라는 부감을 잡거나 앙각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적어도 수평적으로는 360도 곳곳에 포진한 듯 숨을 헐떡이게 하는 컷팅을 가능하게한다. 

게다가 가끔씩 반복되는 슬로우 모션과 정상 속도의 액션은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난 이 장면만은 내심, 오리지널을 그대로 흉내냈겠거니 했는데, 제작사 쪽은 국내 안무가가 오리지널의 뼈대를 변형시켜 창작했다고 전했다.

<헤어 스프레이>에는 이런 멋진 장면은 없다. 하지만 잔 재미는 더 많다.

인종차별과 신분 차이, 외모 차별 이런 무거운 주제를 다루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코미디로 풀어간데다 뮤직 넘버도 <뷰티풀게임>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입에 잘 붙는다.

(<뷰티풀게임>은 빡세디 빡센 '뷰티풀게임' 한 곡만 기억난다^^)

<헤어 스프레이>는 '1960년대 인종차별이 횡행하던 미국 볼티모어'를 시대문화적 배경으로 하고 있어 우리 관객에게 어필할까하는 미심쩍음이 주변에 많았다.

그런데 난 사실 이걸 보면서, 그러니까 외모 차별, 인종 차별의 미국적 원형을 보면서 몸 차별이 여전하다못해 심해지고 있는 성형공화국(얼마전 한 명이 수술받다 죽었다!)의 이미지가 겹쳐보였고.

또 인종 차별 장면들에서는 (흑인 학생들이 학교 구석에 모여 청소를 한다. 사실은 척하면서 춤추고 있지만^^) 돈 좀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만이 품질좋은 -진짜 좋은지는 모르겠지만-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한국의 냉혹한 자본주의(cold capitalism) 현실이 디졸브됐다.

이렇게 내가 극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연출과 우리 배우들이 미국식 유머와 리듬을 비교적 무난하게 소화해낸 덕분이지 싶다.

그만큼 적어도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뮤지컬 제작사들의 수준은 많이 안정된게 아닐까.

그런데 사실 오늘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거다.

1970년대 이념과 종교 갈등이 심했던 아일랜드의 상황을 축구를 매개로 풀어낸 멋지게 풀어낸 뮤지컬, 1960년대 인종차별이 심하던 미국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일들을 TV와 춤으로 코믹하게 풀어낸 뮤지컬, 왜 우리가 이걸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을까? 아니 이것 밖에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지만.

세계 현대사의 모든 갈등을 온 몸으로 폭발시켜버린 한반도는 이야기의 보고인데, 왜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 대형 뮤지컬을 볼 수 없는 것일까?

라이센싱으로 이 정도 완성도를 보여줄만큼 뮤지컬 제작 수준이 꽤 올라와 있는데.

소품 뮤지컬 <김종욱 찾기>처럼 우리의 아픔과 기쁨을 실감나고 살갑게 노래하는 그러면서도 진중한 소재를 골라 묵직한 주제의식을 드러내보이는 중대형 뮤지컬은 언제쯤 볼 수 있을 것인가...

☞ [취재파일] 오리지널 VS 라이선스
☞ [취재파일] 뮤지컬 배우들과 떡볶이 인터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