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전 총재의 한나라당 탈당과 대선후보 출마선언이 나오자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일제히 비판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비판의 초점은 신문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한 쪽은 이 전 총재를 비판하면서 그가 이명박 후보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쪽은 이 전 총재의 행위자체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SBS 뉴스는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이 전 총재가 출마를 선언한 지난 7일 SBS 8시뉴스는 그의 출마선언이 우리 정치에 남길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이 전 총재가 당내 검증 절차로 자리 잡은 경선 제도를 무력화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면서, 우리사회가 어렵사리 다져 온 절차적 민주주의에 흠집을 내는 처사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명박 후보에 의한 정권교체는 어려우며 자신이 그 대안이라는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선언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국민 앞에서 다짐한 정계은퇴 약속과 민주주의 원칙을 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전 총재의 출마에 의해 오히려 정권교체가 불확실해 졌다는 것입니다. 이들 중 민주주의 원칙 위반에 대한 비판은 언론의 당연한 기능이지만, 정권교체를 불확실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은 정파적 입장에 속합니다. 따라서 SBS 뉴스가 민주주의 원칙 위반에 비판의 초점을 맞춘 것은 온갖 원색적인 용어들을 동원하여 이 전 총재가 이 후보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그의 욕심이 정권교체를 어렵게 만들 뿐이라고 공격한 일부 신문들에 비해 합리적인 태도였습니다.
SBS 뉴스는 이 전 총재의 출마로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내놓고, 이에 대한 대답을 시도했습니다. 하나는 이 전 총재가 중도사퇴하지 않고 끝까지 갈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 뉴스는 그가 여론조사 지지율 20%대를 넘지 못할 경우 보수층의 후보 단일화 요구에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면서도, 내년 총선을 바라보고, 대선 승부와 관계없이 끝까지 갈 가능성도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음, 박근혜 전 대표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뉴스의 대답은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 할 선택의 순간을 기다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뉴스는 또 이 전 총재의 출마가 범여권 후보에게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것은 범여권이 어떤 묘수를 찾아내는지에 달렸다고 대답했습니다. SBS 뉴스의 질문은 시청자가 궁금해 하는 문제를 잘 집어냈습니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지지율이 낮으면 사퇴압력을 받을 것이고, 박 전 대표는 선택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 전 총재의 출마가 범여권에 유리한가는 범여권이 하기에 달렸다는, 대답 아닌 대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뉴스가 제시하는 대답에는 심층취재와 분석으로 얻은 정보가 들어있어야 합니다.
반면에 이날 밤 SBS 토론프로그램인 ‘시시비비’는 8시뉴스가 던진 것과 같은 질문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그 내용은 뉴스보다 훨씬 구체적이었습니다. 토론자들은 이 전 총재 쪽으로 넘어간 지지층의 성격을 분석했고, 박 전 대표가 이 전 총재를 지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지난 8일 SBS 뉴스는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에 대해 검찰이 내부적으로 수사준비에 착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동안 검찰은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관련 수사를 기피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습니다. 뉴스는 지난 1일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 변호사가 삼성이 검사 40명에게 10억원을 줬다고 폭로하자 검찰은 고발이 들어오면 수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지난 5일 “현직 최고위 검사 가운데도 삼성의 불법뇌물을 정기적으로 받은 사람이 여럿 있다”고 주장했고, 다음 날인 6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삼성그룹 수뇌부를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고발이 들어오면 수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바꾸어 ‘떡값’ 검사의 명단을 공개해야 수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같은 검찰의 태도는 고발장이 접수되면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한다는 수사원칙에도 맞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뉴스는 이점을 문제 삼았어야 하는데, 검찰의 입장을 전달만 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떡값을 받았다는 검사의 명단을 공개해야 수사팀을 구성할 때 문제 있는 검사를 제외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한 신문은 사설을 통해 “삼성의 돈을 받지 않았다고 믿을만한 검사가 수사팀조차 꾸릴 수 없을 정도로 적다는 말이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SBS 뉴스는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SBS 뉴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이 검찰의 수사 기피가 아니라 김 변호사가 떡값을 받은 검사의 명단을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명단의 공개는 ‘개인 김용철’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김 변호사는 지난 5일 “명단을 밝혀야 할 공적인 기회가 오길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밝히겠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떡값을 받은 검사의 명단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파악하고, 언론이 이를 추적하여 보도할 일입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먼저 명단을 만천하에 공개하라면서 김 변호사에게 공을 넘겼고, 언론은 팔짱을 끼고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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