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23일 이틀 간의 고심 끝에 정부의 이라크 파병연장 방침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당초 그는 당이 24일 의원총회를 통해 당론을 정하면 따른다는 생각이었지만 오히려 당보다 하루 먼저 개인 입장을 발표한 것.
이를 위해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강재섭 대표, 안상수 원내대표, 이한구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와 유종하 외교.안보 선대위원장 등 선대위 관계자들을 급히 불러 "내 입장을 빨리 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파병연장 문제와 관련한 긴급회의를 가졌다.
이 후보는 지도부의 의견을 일일이 들어본 뒤 ▲이라크 정부도 한국군 주둔을 원하는 점 ▲자원외교를 비롯한 경제협력의 관점에서 국익에 부합한다는 점 ▲주둔지가 안전한 지역이란 점 등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당이 파병 연장에 찬성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서 파병 연장을 반대하는 참석자는 없었지만 찬성 당론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 아니면 지난 연말처럼 '권고적 찬성'에 그치는 것이 나을 지를 놓고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 후보가 연장 찬성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고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찬성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24일 의총에서도 이 같은 이 후보와 지도부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 참석자는 "지도부 내에서 찬성 당론을 정하자는 의견이 우세한 만큼 내일 의총에서도 '권고적'이란 수식어 없이 찬성 당론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이처럼 예정보다 빨리 입장을 결정한 데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정당의 후보들이 이미 찬반 의견을 내놓은 점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과거 여당이었던 신당과 정동영 대선후보가 정부 방침과 달리 파병연장을 사실상 반대키로 한 것을 놓고 "대선구도를 이념대결로 만들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많았던 상황에서 이 후보가 선명한 '찬성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경원 대변인은 "이 후보는 모든 정치적 변수와 고려를 배제한 채 오직 국익과 우리 국민의 생명보호라는 두 가지 기준만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 것"이라며 "표를 의식해 눈치를 보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 후보의 원칙론을 놓고 일각에서는 "2002년 이회창 대선후보의 패착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묘수"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여중생 사망사건의 여파로 '반미 대 친미' 구도가 조성되고 진보세력의 촛불집회가 연일 열리자 초기엔 여권과 노무현 후보를 향해 "촛불집회를 조장해 반미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대선일이 임박하자 촛불집회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보수세력 사이에서 "대쪽 소신을 저버렸다"는 등의 비판이 일면서 '산토끼 잡으려다 오히려 집토끼를 잃는' 결과가 됐다는 지적도 적지않았다.
아울러 찬성 배경에는 '경제지도자' 이미지를 앞세워 여론지지율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후보의 자신감도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범여권이 파병연장 이슈를 활용해 이념대결 구도를 만들더라도 경제 이슈가 선점한 현 대선정국에서는 국민들이 이념 변수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핵심 당직자는 "신당이 이번 대선을 아무리 이념구도로 끌고 가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며 "남북정상회담과 파병 이슈 등을 띄워서 '평화 대 반평화' 구도로 만들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국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