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호소형"(정동영) vs "서민적 설득형"(이명박)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후보가 지난 15일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밤샘 TV정책 토론을 열자"고 제안하면서 두 사람이 선거전에서 펼치게 될 연설, 토론대결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이들은 18일 매일경제신문사 주최 세계지식인포럼에서 잇따라 기조연설을 하며 대선후보 확정후 처음으로 `강연대결'을 펼쳤다.
대체로 방송기자 출신의 정 후보가 뛰어난 언변을 자랑하며 이 후보를 압도할 것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한 이 후보가 오히려 연설의 맛은 더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이들의 연설스타일은 과거 각자가 걸어온 '개인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선거전에서 재미있는 관전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방송인 출신 정동영 '호소형' = 대중연설 실력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소력있고 열정적인 스타일로 통한다.
옥타브를 단계적으로 높여가며 클라이맥스에선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호소형'으로 중간중간 손을 내밀거나 들어올리는 제스처도 화려한 편이다.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노타이' 차림으로 연단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젊은시절 사람 앞에 서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할 정도로 내성적인 편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의 연설은 상당부분 노력의 결과라는 평이다.
MBC 기자생활을 하면서 정제되고 압축된 표현을 하는 방법을 단련했고 한때 웅변학원을 다니면서 부단한 공을 들이기도 했다.
실제로 정 후보를 옆에서 수행했던 참모들은 그가 연단에 오르기 전 볼펜으로 원고에 몇번씩 줄을 그어가면서 암기할 정도로 내용숙지에 애를 쓴다고 한다.
평소에도 연설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통계수치를 틈틈이 외우고 성대보호를 위해 끝맛이 떨떠름한 살구씨 기름을 마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 후보측은 97년 12월 대선 때 명동 지원유세를 최고의 연설 중 하나로 손꼽는다.
당시 김대중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는 동안 청중도 울고 자신도 울면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이심전심의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달변이라는 점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나치게 완벽을 기하다보니 인간미가 없어 보이거나 유머가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
종종 목소리의 톤이 필요 이상으로 올라간다는 점도 자주 듣는 지적사항이고 제한된 시간 내에 너무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려다 보니 집중도가 떨어져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CEO 출신 이명박 '설득형' = 현대그룹 재직 시절부터 부하직원들에게 "말 잘하는 사람은 일을 잘 못한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곤 했다고 한다.
기관지 확장증으로 병역면제를 받았을 정도로 목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이번 대선출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중연설을 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아 기교도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게 주위의 평가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연설문을 또박또박 읽어 의미전달에 치중하는 '규격화'된 연설을 하는 데 비해 이 후보는 현장분위기에 따라 연설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은 물론 내용도 연설문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를 때가 많은데다 때때로 말실수로 보좌진들을 당혹케 하기도 한다.
이 후보는 그러나 가난한 어린시절, 현대그룹 CEO(최고경영자), 국회의원, 서울시장 등 다양한 경험을 서민적인 말투로 거침없이 쏟아내면서 청중들을 알게모르게 몰입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한다.
특히 대기업 임원으로 수십년 근무하면서 국내외에서 갖가지 비즈니스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설득하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쌓아왔다는 게 그의 강점으로 꼽힌다.
지난 당내 경선중 이 후보가 지방강연을 한 뒤 행사장 뒷정리를 하던 한 60대 인부가 "내가 들어본 정치인 연설 가운데 단연 최고"라는 촌평을 내놓은 것은 일반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일화다.
이 후보측은 경선기간 8차례의 토론회와 13차례의 합동유세, 검증청문회까지 거치면서 토론과 연설 실력을 차근차근 쌓은 것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공수의 강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체득했기 때문에 본선에서 정 후보에게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편 이 후보는 약한 목을 보호하기 위해 도라지즙, 살구씨 기름의 도움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 감기약 한 알 먹으면 목이 풀린다"는 한 원로 아나운서의 권유를 받고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