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까지만해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한줄서기'는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월드컵문화시민운동'이라는 한 단체의 운동으로 이 한줄서기는 불과 몇 년 만에 문화인 여부를 가르는 잣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말 그대로 '월드컵이라는 국가적인 행사를 앞두고 한줄서기를 지켜야만 문화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는 명제가 성립한 것이죠.
바쁘게 가는 사람을 위해 에스컬레이터 왼쪽을 비워두고, 서서가는 사람은 오른쪽으로 서자는 거죠.
내용은 간단한데 놀라운 건 확산 속도였습니다.
운동이 추진된 지 불과 2~3년이 안돼 정착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요즘 시민들이 이 한줄서기를 지키는 걸 보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정말 경탄할 정도입니다.
빨리가고 싶은 사람 빨리가고, 천천히 가고 싶은 사람 천천히 가고, 게다가 남을 배려하는 행동이라고까지 의미부여를 해주니, 당연히 한줄서기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겠죠.
게다가 일본이나 홍콩, 유럽 같은 선진문화에도 이런 한줄서기가 있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까지 힘을 보탰습니다.
분위기가 이렇게 흐르다 보니 지하철 공사와 도시철도 공사도 적극 나서서 시민단체와 함께 이 운동을 펼쳐왔습니다.
결국 이 한줄서기는 모두가 편하기 위해 지키기로 합의한 하나의 사회적 약속의 반열에 오르게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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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올 9월 5일 도시철도공사가 돌연 '한줄서기는 위험하다'며 지난 7년동안 스스로 펼쳐온 운동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들고 나왔다는 점입니다.
승강기 안전관리원의 조사 결과 한줄서기 실시 이후에 에스컬레이터 사고가 4배 가까이 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한줄서기를 폐지하고 다시 두줄서기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는데요.
결국 도시철도공사 관할인 5,6,7,8호선 역에서는 에스컬레이터 '두줄서기' 캠페인이 벌어지고, 지하철공사 관할인 1,2,3,4호선 역에는 한줄서기가 그대로 권장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겁니다.
1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종로3가역 같은데는 더 가관인데요.
한줄서기를 하라는 지하철 공사 입간판이 서 있는 1호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옵니다.
하지만 불과 수십미터를 걸어서 5호선 환승구간으로 가면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벽에 '한줄서기는 위험한 잘못된 문화'라는 도시철도공사의 포스터가 붙어있습니다.
이 모든 혼란의 근원은 7년전 지하철 공사와 도시철도공사가 한줄서기를 했던 데서 찾아야 할 겁니다.
외국에서 하고 있는 좋은 제도라는 말에 이것저것 앞뒤 따져보지도 않고 덥석 캠페인만 열심히 벌이고 봤다는 겁니다.
뒤늦게 알아보니 일본, 홍콩 같은 나라들은 한때 에스컬레이터 한쪽을 비워 두자는 한줄서기 운동이나 관습 같은 것이 있었던 건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나라들이 곧 이 한줄서기에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방침을 바꿨다는 겁니다.
결국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피상적으로만 관찰하고 무턱대고 받아들였다가 지난 7년동안 쓸데없는 노력만을 쏟아부은 셈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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