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단 말인가?
이라크 땅을 밟아본지 4년.
그러나, 이라크를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국제부를 떠난 뒤 외교부를 취재할 때 겪은 어느 한국인 청년 피랍사건은 아직도 머릿속에 떠올리기 싫은 트라우마(trauma)로 남아 있다.
사실 이번 취재는 취재도 아니다.
4년전 요르단 암만에서 바그다드까지, 또 낫시리아까지 목숨건 육로 이동과는 달랐다.
자이툰 교대 병력을 실은 전세기에 편승한 뒤 쿠웨이트에서 군 수송기로 갈아타면 그만이었다.
몸이 가벼운 대신 마음은 무거웠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와서 어떤 말로 전해야 하나?
자이툰이 파병된 지 3년이 다 됐는데 새로운 것이 있을까?'
군에서 준비한 일정표를 보니 숨이 꽉 막힌다.
아르빌 주지사, 쿠르드 자치정부 건설부 관리들, 현지 기업인과의 만남.
아르빌의 민초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직접 만나 들어볼 기회조차 없다.
급히 싸들고 온 이라크와 자이툰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는데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는다.
'짧은 일정에 무리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 보고 가자.'
쿠웨이트에서 갈아탄 수송기의 소음과 옴짝달싹 못하게 비좁은 공간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무렵 기내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이라크 동북부 아르빌 도착이 임박해 전술비행을 하려는 것이었다.
전술비행은 혹시 있을지 모를 RPG 등 지상 공격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급강하하거나 날개를 좌우로 기울이는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작은 창밖으로 하늘이 보였다 땅이보였다 하더니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은 마구 춤을 추어댄다.
평소 놀이기구 타는 것조차 꺼려해 겁을 잔뜩 먹고 있었는데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수송기의 뒷문이 열리더니 지상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라크 땅이다. ('이라크 땅'이라기 보다는 '쿠르디스탄'이란 표현이 정확한 것임을 나중에 알게됐다.)
자이툰의 장교가 공항에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버스에 올라 하나씩 설명을 들으니 서울에서 상상한 아르빌과는 다소 모습이 달랐다.
공항 청사를 새로 짓고 활주로를 늘리는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이곳에 국제 직항편이 나 있다는 설명에 깜짝 놀랐다.
'이라크는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돼 외교통상부 장관의 허가를 받고서야 취재를 올 수 있었는데 외국 사람들은 직항편으로 드나들고 있다니...'
자이툰의 첫 인상은 깔끔했다.
언덕 위로 선명하게 새겨진 ZAYTUN이라는 글자가 태극기와 함께 취재진을 맞아주었다.
부대 현황을 청취하고 자이툰의 장교들과 양고기 케밥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며 부대의 근황과 현지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쿠르드인들은 어떤 생각을...
이튿날은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먼저 아르빌 주 청사로 향했다.
아르빌주는 술레이마니아, 다훅과 함께 쿠르드 자치정부(KRG; Kurdistan Regional Government)를 구성하는 3개 주 가운데 하나.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준 나우자드 하디 주지사는 2007년 5월 인천시와 맺은 '의향서'를 꺼내 보이며 한국과의 우정을 과시했다.
주지사는 "쿠르드 사람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에서 몹시 고통을 겪었고 당시 이라크 정부는 쿠르디스탄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고 소개했다.
그의 말 속에는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킨 이라크 전쟁에 대한 나름의 평가가 녹아 있었다.
"자이툰이 지난 3년동안 한 모든 일에 감사드립니다. 보건, 군 등 많은 분야에서 그들은 우리 쿠르드인들을 도왔습니다."
한국 기업의 진출도 환영한다고 했다.
유전법은 이라크 중앙정부에서 제정하게 되겠지만, 한국이 유리한 지위를 선점하리라는 뉘앙스도 풍겼다.
그는 한국의 사정을 잘 아는 듯 했다.
"한국민과 한국의 군대, 그리고 한국 국회의 지원에 감사하며 자이툰이 더 남아 쿠르드인들을 도울 수 있도록 동의해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쿠르드 자치정부 건설부 관리들과의 만남, 또 내로라 하는 쿠르드 지역 기업인과의 만남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산 밖에 친구가 없다'는 쿠르드인 입에서 자이툰이 떠날 때 '꽃을 선사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터키, 이란, 아랍 등 이민족의 등쌀에 수천년동안 독립국가조차 갖지 못한 쿠르드인이 낯선 이방인에게 이렇게까지 말했다면 분명 최고의 찬사다.
'파병지를 참 잘 선택했구나!'
3년 전 우리 군은 파병지로 아르빌 남쪽 키르쿠크를 택했다가 현지 답사를 와보고는 황급히 아르빌로 바꿨다고 한다.
반미정서가 강한 데다 외국 군대에 적대적이라 어떤 위해가 가해질 지 모르는 곳이었다.
2004년 2월 13일 국회에서 파병동의안이 통과된 데 이어 이미 자이툰 부대가 창설되고 나서야 뒤늦게 파병지를 변경했으니 당시 국회는 무엇을 보고 파병동의를 해줬는 지 의문이다.
파병에 앞서 현지 정찰을 나섰던 황의돈 장군(초대 자이툰 사단장)은 키르쿠크는 파병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귀국했으며 청와대 보고를 거쳐 5월에야 아르빌로 파병지를 최종 결정한 비화를 <신의 선물, 자이툰>이라는 책자에 상세히 적고 있다.
자이툰이 무리해서 키르쿠크로 갔다면 진작에 보따리를 싸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아르빌 성채에 올라 성벽 밖을 내려다 보니 성채를 중심으로 동심원 모양으로 도시가 형성돼 있어 한바퀴 돌면 아르빌을 다 볼 수 있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국제회의장이 최근 완공됐고 외국인을 위한 주거단지도 조성되고 있었다.
지난 1년 사이 아파트 값이 40배나 올랐다는 한 자이툰 장교의 전언은 외국인 투자 붐, 흔히 말하는 '과열 조짐'을 짐작케 했다.
도시 전체를 리모델링한다 싶을 정도로
전후 재건의 뜨거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코앞에 재래시장이 내려다 보인다.
직접 내려가 사람들을 만나고 물건도 사보고 싶지만 그럴 형편은 못된다.
이라크 다른 지역에 비해 치안이 비교적 안정돼 있다 해도, 취재진은 이동간 방탄조끼를 입고 철모까지 쓴 채 자이툰 경계병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현지 기업인도 소총으로 무장한 개인 경호원을 붙이고 다니는 형편이었다.
동맹국의 할일은?
숙소로 돌아가 인터넷을 뒤져보니 한미 정상회담 소식이 들어와 있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한국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파병 연장에 대한) 협조 요청을 했고, 노 대통령은 "국회와 협의해 동맹국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동맹국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
파병 연장 말고는 정부에서 고려하고 있을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이툰은 좋은 부대다.
현미경 들여다보듯 미시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린 엔젤(Green Angel)로 주민들과 주민들과 하나가 된다.
민병대 병력을 흡수한 제르바니 같은 쿠르드 군대를 교육시키고 검문소를 지어주는 등
쿠르드 정부의 든든한 친구다.
근래에는 유엔이라크지원단(UNAMI) 시설에 대한 경계지원에 나섰고, 바그다드 주재 한국 대사관 경비도 맡아 외교관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자이툰은 두 얼굴이다.
한국식 이름은 이라크평화재건사단이지만 미국 주도의 이라크 다국적군(MNF-I)에 소속된 미국의 동맹군이다.
이라크 북동쪽을 맡고 있다고 해서 현지에서는 MNF-NE(NorthEast)로 불린다.
현재 미국을 제외하고 연합군 파트너로 25개국이 주둔해 있는데 이가운데 사단급(소장, 별둘)이상 부대가 주둔 중인 나라는 미국을 빼고 영국과 폴란드, 그리고 대한민국 뿐이다.
(현재 파병국: Albania, Armenia, Austrailia, Azerbaijan, Bosnia and Herzegovina,
Bulgaria, Czech Republic, Denmark, El Salvador, Estonia, Georgia, Japan, Kazakhstan,
South Korea, Latvia, Lithuania, Macedonia, Moldova, Mongolia, Poland, Romania,
Singapore, Slovakia, Ukraine, United Kingdom)
4년 전 네오콘이 득세한 부시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disarm)한다며 이라크를 침공했고,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다. 후세인 일가는 미군에 총살을 당하거나 체포돼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스라엘의 '앓던 이' 즉 최대 안보위협이 제거되면서 중동의 안보질서가 재편되는 듯 했다.
그런데, 후세인이 숨겨뒀다는 대량살상무기는 나오지 않았다.
전쟁의 명분이 실종되면서 이라크전은 '원인무효'가 돼 버렸고 설상가상 정보조작 문제까지 불거졌다.
결국 미국과 영국은 유엔의 승인조차 얻지 못한 불의의 전쟁을 일으켰고 이라크는 자유의 나라는 커녕 테러의 온상이 돼 버린 게 지금의 상황이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뒤섞은 듯 보이는 기형적인 네오콘식 안보 강화의 논리가 안보 불안을 초래(creating insecurity)한 역설을 낳고 말았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쫓아낸 부시 2기 정권은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깊은 수렁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미국의 동맹군으로서 자이툰의 주둔이 이라크 전체적으로는 환영을 받을 수 없는 이유다.
망원경으로 둘러보듯 거시적으로 보면 그렇다.
파병 연장의 논리
우리 군은 파병 연장의 근거로 두 가지 정도를 들고 있다.
첫째는 경제적 실익론.
3년 동안 16,000명 정도의 장병들이 자이툰을 거쳐 갔는데 이들이 흘린 땀이 국익과 직결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쿠르드 자치 정부가 자이툰이 계속 있어주기를 바라니 주둔 연장은 우리 기업들에게 득이될 것이라는 논리다.
둘째는 군사동맹론.
자이툰을 떠나기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국내에서는 철군여론이 일고 있는데 현지에서는 자이툰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많이 들려 기사 쓰기가 어렵다'고 솔직히 고백하며
현지 지휘관으로서 파병활동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묻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윤영범 자이툰 사단장은 "작전이 끝나지 않았는데 예하 사단만 보따리를 싸가지고 귀국했을 때 한국군의 위상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파병 당시 3,800명이던 병력이 1,200명 수준으로 줄기는 했어도 자이툰은 소장급 장성이 지휘하는 사단이다. 자이툰이 철군하면 다국적군이 별도의 사단을 편성해 운영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어 동맹국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군이 설파한 어떠한 논리보다도 가장 솔직한 답변이었다.
경제적 실익론으로 무장한 자이툰 연장론의 이면을 현지 지휘관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그의 발언이 청와대 브리핑에서도 거론됐으니, '솔직한 심정'을 요구한 기자로서 혹시 윗선의 질책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2월 8일 자이툰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깜짝 방문한 이른바 '동방작전'이다.
노 대통령은 당시 격려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들의 땀과 노력이 대한민국의 발언권으로 작용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있고 없음에 따라 외교부장관이 하는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점을 알아주십시오..."
그 뒤 2년 7개월이 지나 열린 한미 정상회담.
남북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두고 노 대통령은 부시에게 한반도 평화체제와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라크에서 지속적 협력을 요청하는 부시에게 "동맹국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갈 것"이라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까?
"다양한 목표와 기준이 결합하고 얽혀 큰 역사의 줄기를 만들어내고 때로는 모순된 것들이 조화를 이루기도 하는 것"이라는 2년 7개월 전 자신의 말을 곱씹고 있지 않았을까?
굿바이 자이툰! 굿바이 아르빌!
시차도 있는 데다 복잡한 상황을 안고 잠을 청하니 새벽에 잠이 깼다. 막사 문을 나서니 별들이 선명하고 초승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오래지 않아 해가 떠오르고 부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그린엔젤(Green Angel) 민사작전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에게 줄 커다란 인형을 들고 뛰는 병사도 있다.
"어머니 건강하십시오. 임무완수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국군방송 취재진과 영상편지를 촬영중인 병사가 멋쩍게 안부를 전하는 모습도 보인다.
"자이툰 아자! 아자! 아자! 대한민국 아자! 아자! 아자!"
활기찬 구호와 함께 장병들은 마을로 향했다.
안내 장교는 취재진 일정이 빠듯해 민사작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나중에 촬영 테이프라도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보따리를 쌌다.
다음 행선지는 쿠웨이트, 그리고 레바논이다.
취재를 마쳤으면 발걸음이 가벼워야 할 텐데 그렇지 못했다.
복잡한 상황을 머리에 이고 가자니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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