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된 2명을 제외하고 피랍 6주 만에 전원 석방된 한국인 일행이 1차 건강 검진을 하려는 의료진에게 가장 먼저 요청한 약품은 해충에 물려 가려운데 쓰는 약이었다고 한다.
인질 석방을 위해 카불에 급파된 한국 협상팀의 고위 관계자는 이들이 지난달 31일 오후 두바이에 도착한 뒤 석방된 인질과 관련한 뒷이야기를 일부 털어놨다.
="벌레물린데 바르는 약 먼저 달라"
피랍자 가운데 지난 13일 가장 먼저 석방된 김경자·김지나 씨는 한국 측으로 신병이 인도된 뒤 건강 검진 차 대기해있던 의료진에게 "벌레에 많이 물려서 매우 가렵다. 약을 먼저 줄 수 없느냐"고 요청했다.
실제로 외부로 노출되는 손과 발에 벌레가 문 상처와 이 상처를 긁어 딱지가 수십 개 목격됐다.
이들 뿐 아니라 29일과 30일 양일간 순차적으로 석방된 인질들도 억류생활 동안 벌레에 물려 가려움증을 호소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들이 탈레반에 억류된 곳이 토굴이나 움막, 민가의 가축 우리 같은 사실상 야외나 다름 없는 비위생적인 공간이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또 가려움증에 바르는 약 같은 기초적인 의약품도 제대로 제공되지 못했음도 알 수 있다.
이들이 신고 있던 신발이 아프간 현지인과 마찬가지로 슬리퍼나 샌들이었던 탓에 살이 많이 노출됐던 것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석방 뒤 식사량 줄어…"라면 먹고 싶다"=
지난달 29일과 30일 석방된 인질들은 보안이 철저한 카불 시내의 비교적 고급호텔 2인실에 묵었는데 이 호텔에서 제공되는 기름진 식사에 선뜻 입을 대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40여 일간이나 부족하고 질이 떨어진 음식을 먹어온 탓에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면 배탈이나 설사가 나기 때문이다.
식사량도 상당히 줄었다는 게 협상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달 31일 카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서명화 씨는 "아프간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그들도 가난해 음식이 충분하지도 않았다"고 말했었다.
협상팀은 자신들이 먹으려고 한국에서 가져 온 즉석 밥인 '햇반'과 김을 이들에게 나눠줬다.
이 관계자는 "억류 생활기간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라면이라는 인질이 많았다"며 "31일 아침 호텔 뷔페는 자기가 고를 수 있어서 조금씩 식사를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서로 이야기를 하며 그간 (쌓여있던) 고통을 쏟아내는 게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데 중요하다고 보고 두 사람씩 한 방에 배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룹마다 억류 경험 달라"
탈레반에 납치된 23명은 처음 11명과 12명으로 나뉜 뒤 다시 3~4명씩 5~6개 그룹으로 쪼개져 억류생활을 했다.
이들은 석방될 때까지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일행 2명이 살해된 지도 모를 정도로 격리돼 있었는데 불행중 다행으로 좀 더 좋은 대우를 받았던 그룹이 있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어떤 그룹은 매일 매일 투박한 식사와 병, 협박에 시달리며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했는가 하면 다른 그룹은 그나마 잘 사는 민가에 맡겨져 비교적 나은 식사나 위생 환경을 제공받았다는 것.
탈레반은 낮엔 자신을 지원하는 농가 등에 인질 감시를 맡겼고 밤엔 자신들이 직접 인질을 억류했다.
이 관계자는 "대우를 그래도 잘 받은 그룹은 석방된 뒤에 다른 그룹의 억류생활 경험담에 놀라기도 했다"며 "하지만 전문가에 따르면 아무리 대우를 잘 받았다손 치더라도 장기간 감시와 억류생활을 겪은 사람은 며칠이 지나면 심각한 정신적 외상이 온다고 한다"고 말했다.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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