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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열사 순국 100년…불꽃이 된 죽음의 의미

<8뉴스>

<앵커>

구한말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돼,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이준' 열사가 순국한 지 모레(14일)로 꼭 100년이 됩니다. 헤이그 특사 100년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연속 기획, 오늘 첫 순서에서는 '이준' 열사의 죽음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죽음에 대해서 제기되는 여러 의문들을 추적했습니다.

김영아 기자입니다.

<기자>

대한제국 제 1호 검사였던 이준.

의기가 강직했던 이 준은 1907년 3월, 을사 5적을 처단하려 했던 기산도라는 인물을 풀어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법무장관인 법부대신이 이를 제지하자, 아예 법부대신을 고소해 버립니다.

있을 수 없는 항명이지만, 이준은 이 일로 고종의 눈에 들었습니다.

[이계형/국민대 교수 :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누굴 보낼 것이냐 고민할 때죠. 이렇게 강직한 사람이라면 어딜 가든 충분히 제 몫을 할 거란 말이죠.]

최근 발표된 한 일본학자의 논문입니다.

일본이 헤이그 밀사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고종을 폐위시킬 빌미를 삼기 위해 밀사들의 활동을 방치했다는 주장입니다.

이처럼 일본의 치밀한 각본과 감시속에 당도한 헤이그는 이준 열사에게는 한없는 좌절의 땅이었습니다.

제 잇속만 챙기는 열강들의 무대에서 회의 한번 참석치 못하고 애만 태운지 20일째.

이 열사는 호텔방에서 '이 나라를 구해주소서' 애끓는 절규를 남기고 돌연 숨졌습니다.

할복했다는 주장에서부터 종기로 인한 감염으로 사망했다는 설, 좌절감때문에 스스로 음식을 끊었다는 설...

국사편찬위원회는 결국 62년 이 열사의 죽음을 '분사'로 규정했습니다.

넘치는 의기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울화를 터뜨리다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유성천/이준 열사 외손녀 : 그렇게 백방으로 애를 쓰셔도 뜻을 못 이루고 그랬을 적에 그 심정이라는 건 본인 아니면 어떻게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이준 열사는 100년 전 이역만리 작은 호텔방에서 비통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초라해보였던 그 죽음을 우리 민족의 오늘을 있게 한 불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준 열사 유해 환국(1963년 10월 대한뉴스) : 이제 다 같이 머리 숙여 열사의 거룩한 뜻을 되새기며 삼가 열사의 영전에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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