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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콩쿠르 시즌, 휴일을 날려도..

마지막 편지를 보내드린 지 한 달이 넘었군요. 그동안 소식이 뜸해 죄송합니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장마철이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건강 관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지금 모스크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 13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얘깁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폴란드의 쇼팽 콩쿠르와 더불어 흔히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힌다는 음악 경연대회입니다. 4년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와 성악 부문으로 나뉘어 열립니다. 

 이번 대회는 어제부터 3라운드, 결선을 치르기 시작했는데요, 피아노 부문에서 6명의 결선 진출자 중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임동혁 씨가 들었습니다. 임동혁 씨는 많이 알려졌다시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심사 결과에 불복해 수상을 거부하면서 파문을 일으키긴 했지만), 쇼팽 콩쿠르 2위 없는 3위를 차지하며 이미 주요 콩쿠르에서 빼어난 실력을 보여준 피아니스트입니다.

이미 결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관련 기사가 넘쳐나는 걸 보니, 올해 이 콩쿠르에 쏠린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역시 '한국 선수'의 수상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겠지요. (엄밀히 말하자면 결선 진출만으로 수상이 확정된 셈입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6위까지 시상하거든요.)

며칠 전 어느 매체에 실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기사에서 '준결승 진출자의 국적을 살펴보면', '태극 마크를 달고 결승 진출을 노리고 있다'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정면에 태극기가 휘날리길 기대한다' 같은 표현이 나왔더라고요. 어차피 콩쿠르라는 게 등위를 매겨 시상하는 것이니 운동 경기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우리는 콩쿠르를 너무 국가 대항 운동 경기처럼 여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인기 종목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을 때, 온 나라가 들썩거리며 메달 획득에 열광하고 좋아하지만, 그 열광이 종목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는 경우는 적은데, 혹시 콩쿠르에 대한 관심도 이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왕 나간 것, 임동혁 씨가 이번에도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합니다. 그리고 콩쿠르에 대한 관심이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확대됐으면 합니다.

모스크바에서 연수 중인 회사 선배의 전언에 따르면, 현지 음악계에서도 임동혁 씨의 연주에 관심이 크다고 합니다. 며칠 전 현지의 문화 전문 채널 '꿀뚜라'에서 결선 진출자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했는데, 여기서 임동혁 씨를 '서양인보다 더 서양 악기를 잘 연주하는 연주자'라고 칭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선 진출자 6명 가운데 러시아 인이 4명일 정도로 주최국 러시아 텃세가 심하지만, 또 지난번 우승자가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연달아 동양인에게 우승을 안겨주겠느냐는 우려도 있지만, 그간의 경력으로 미뤄볼 때 임동혁 씨가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역대 대회에서는 지휘자 정명훈 씨가 1974년 피아노 부문 2위를 거뒀던 것이 한국인 최고 성적이었습니다. 당시 귀국 카퍼레이드까지 했었다지요.  아, 임동혁 씨의 형인 임동민 씨가 지난번 대회에서 5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바이올린 역시 신현수, 윤소영 씨 두 명이 결선에 올라 기대를 부풀리고 있습니다. 각각 시벨리우스 콩쿠르, 에후디 메뉴인 콩쿠르 등의 입상 경력을 자랑하며, 일찍부터 국내에서도 유망주로 손꼽히던 연주자들이지요.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예종,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입니다. 임동혁 씨도 러시아 유학 가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서 수학했었지요. 바이올리니스트인 예종의 김남윤 교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 함께 지금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가 있고요. 예종에서는 콩쿠르가 끝나고 나면 축하 연주회를 열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합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쇼팽 콩쿠르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만큼 잘 돼 있지는 않지만, 인터넷으로 콩쿠르 실황을 실시간 중계합니다. 임동혁 씨의 결선 연주는 어젯밤 끝났고(어제 이거 보느라 잠 설쳤습니다. 연주 좋았습니다.) 오늘과 내일도 결선이 진행됩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웹사이트(http://www.xiiitc.ru/start.asp)에 들어가 우측 상단에 있는 영어로 보기 단추를 누른 뒤, 우측 하단에 '온 라인 트랜슬레이션(바이올린)' '온 라인 트랜슬레이션(피아노. 첼로)'이라고 쓰인 메뉴 두 개를 찾아보세요. 이 메뉴를 꾸욱 누르면 실황을 볼 수 있습니다. '실시간'이기 때문에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에만 볼 수 있습니다. 연주가 대개 저녁 7시, 7시 반에 시작되기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는 자정, 밤 12시 반이 되지요.  

돌아온 콩쿠르 시즌! 쇼팽 콩쿠르 때도, 리즈 콩쿠르 때도 그랬지만, 항상 수상자 발표가 한국 시각으로 휴일 새벽이었기 때문에(이번에는 30일 새벽쯤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인 결선 진출자가 있을 때마다 저는 휴일 아침 잠을 설치고, 근무를 자청해야 했습니다. 속보에 대비해 미리 화면을 확보하고 기사를 써두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콩쿠르 기사 쓰느라 휴일을 날려버리겠지만, 저는 '왜 콩쿠르는 꼭 휴일에만 발표하는 거야' 하고 투덜거리면서도, 아마 웃으면서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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